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1934)

자막자료실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1934)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824326

제가 본 레미제라블 영화 중 최고이고, 

아마도 영화사상 최고이지 않을까 싶네요.

Harry Bauer의 장발장 연기도 최고고요.

길이가 길다 보니 아무래도 원작을 보다 충실히 반영했다는 평도 듣습니다.


연출은 Raymond Bernard이고, 일전에 <나무 십자가>를 번역했으니 이 분 영화는 두 번째네요.

연출 스타일 정말 맘에 드네요.

자분자분하면서 할 말은 다 하고 분위기 연출 최곱니다.


영상 압축파일을 1주일만 공유합니다. 

자막파일도 압축파일로 올립니다.


운영자님은 이 게시물을 '드라마자료실'로 옮기지 마세요.

이건 신규 에피소드 나올 때마다 자막파일 올라오는 자료실과는 성격이 맞지 않습니다.

한 편의 영화로 간주해야 하는 작품입니다. 

영화 파일만 받고 드라마 쪽은 관심없는 분들이 놓치게 됩니다. 부탁합니다.


"위 출처는 커뮤니티 '씨네스트'입니다. http://cineaste.co.kr 이곳에 오시면 다양한 피드백과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아울러 스크립트를 이용한 불펌을 금합니다.

그리고 타 사이트 업로더 여러분께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작권 문제로 삭제되더라도 가급적이면 퍼가시는 것보다는 링크로 연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Comments

14 스눞
297번째 제작 자막 감사합니다! 귀한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 1934)이네요.
누가 자막 좀 안 만들어주시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영화입니다.
만세! ^__^
S 토마스모어
정말 말로만 듣던 전실이 된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1938년 첫 개봉되었고, 영화가 길어서 1부, 2부로 나누어서 개봉이 되었지요.
원래 TV용 으로 만든 작품인데 우리나라 극장에서 상영했을 정도로 특별함이 있는 영화로 알려졌지요.  이 작품 영상과 자막이 확보되었다는 것만으르도 참 대단합니다.
이 영화의 한글자막화는 정말 역사적인 작업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영상보존을 잘한 프랑스도 참 대단하고.

참 많은 레미제라블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쉽게 볼 수 있었던 장 가방 주연 레미제라블이 실망스러운 만큼
이 영화는 그 반대급부를 완전 충족시켜줄 것으로 보기 전부터 기대가 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24 umma55
댓글로 지나가면서 알려주신 덕에 훌륭한 작품을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GIVE 5 MP 33 스피리투스
고맙습니다.
GIVE 5 MP 39 범부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21 zzang76
수고하셨어요
18 바앙패
이때 영상이 ...
19 큐담
수고하셨습니다.
16 하마다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10 에버렛
감사합니다!!
23 다솜땅
감사합니다. ㅎ잘볼게요~ ㅎ
29 언제나
수고 많으셨습니다.
38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12 삿댓
귀한 작품, 정말 감사드립니다!
GIVE 30 MP S 궁금맨
고맙습니다.
GIVE 10 MP 30 하얀벽돌
좋은 작품 자막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28 이야호
고맙습니다
10 넘조아
그동안 받아놓고 자막이 없어 못 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어려운 작업해 주셔서 정말 감개 무량합니다.
잘 보겠습니다.
24 umma55
작업한 보람이 있네요.
20 pupukim
감사합니다
35 Евгения
고맙습니다.
10 klaus1229
감사합니다
6 잭바우어
감사합니다
40 Daaak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2. 1. 8. 감상

단  평 : 비스듬한 곳으로 내려오다


말하자면, 본편은 남근 영화다. 여기서 남근이란 페미니즘적 시선, 즉 원작이 장발장이라는 인물의
슈퍼히어로화, 신분 세탁, 대안 가족 등으로 구성되었다는 비판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라캉적 팔루스를
진술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단순한 형태로서의 직립, 그것의 소박한 꿈의 이미지화에 가깝다.
가령, 이는 오프닝에서 하나의 세계를 지탱하여 바로 세워야한다는 표상으로서의 인물을 캐릭터화하는
방식이 엔딩에서 조용히 놓여진 두 개의 은촛대로 종결될 때 감지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2라는 숫자다.

본편이 20년대 무성영화 시절의 카메라 운용의 성취를 그대로 승계하여 프레임을 장식하는 어법은
전작 <나무 십자가>의 전투 장면에서도 사용된 바가 있지만, 그럼에도 본편이 전작에서 극히 미량
전시한 비스듬한 세계라는 프레임을 전체 분량의 절반에 해당할 정도로 지속하는 선택은 결기가 된다.
왜냐하면, 여기서 근대적 이분법은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텍스트가 어떤 선택을 함으로서 경계가
발생할 때의 명징한 쾌감을 본편은 거부하면서 기울어짐과 그 외부를 혼합하고 그것을 수용한다.

이는 본편이 기꺼이 연극적 어법을 과시할 때도 감지된다. 연극이 실재하는 관객을 부재화시키는
기이하고 어색한 관계를 기반으로 긴장을 조성하는 장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본편이 그같은 방식을
수시로 차용하는 것은 일종의 소격 효과를 발생시키면서 관객의 이입을 방해한다. 즉, 영화와 연극이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이 상이함에도 이를 뒤섞음으로서 원작으로의 무난한 영화적 안착을 방해한다.
남근으로서의 형상, 기울어짐의 지속, 연극화의 삽입 등이 불쌍해질뻔한 관객을 가까스로 구원한다.
3 Tera129
감사합니다
1 진홍
고맙습니다...!!!
1 MJDaddy
고맙습니다. 귀인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