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 Vertigo, 1958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l 출연: 제임스 스튜어트, 킴 노박, 바바라 벨 게디스, 톰 헬모어, 헨리 존스
2012년 비평가와 영화종사자들이 뽑은 최고의 영화 1위 (1962년부터 지켜온 '시민케인'을 밀어냈다.)
당시 히치콕은 그저 가벼운 오락물이나 찍어내는 상업주의 감독 정도로 평가를 받았다. 이 말인즉슨, 대부분의 영화평론가들은 '재미있음'와 '가벼움'을 동일시하는 우를 범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프랑스 잡지, 카예 뒤 시네마(고다르·트뤼포)에 의해 재미난 구성 속에 녹여낸 관음증, 페티시,
집착 등과 같은 심오한 주제의식이 재평가됐고, '현기증 효과(트랙 아웃/줌인 기법)'도 재발견됐다.
박찬욱이 '현기증'을 보고서 감독을 결심했다는 일화나
50년만에 시민케인을 제쳤다는 기사로 인해 이 낡아빠진 영화를 보았다.
그런 선입관은 이내 인생의 영화라는 찬사로 바뀌고 말았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색은 몇몇 특정 장면들과 이야기 전개에서
전반부과 후반부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는 점이다.
지루했던 유령이야기 같은 전반부에 로맨틱한 스카티(제임스 스튜어트)의 추리는
중간쯤에 떡하니하고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가 반정도나 남았는데 벌써 주디(킴 노박)의 정체를 폭로해버리는 히치콕의 자신감에 살짝 당황했지만,
그 후부터 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혼수상태를 표현한듯한 'CG 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휘트니의 특수효과가
관객들에게 현기증이라도 안겨줄 요량으로
어지럽게 펼쳐지는 후반부에선 정신나간 스카티보다
두려움에 떠는 주디를 응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주인공이 뒤바뀐듯한 착각이 들 무렵,
이 매혹적이면서 혼란스럽지만 냉정하면서도 낭만적인 이 체험을 영원히 잊을 수 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