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보다는 형식과 소재에 집착하는 텍스트는 흔히 어떤 정직한 관찰을 소멸시키거나 거부하는 태도를 계급성으로 치환한다.
본편은 전작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의 캐릭터를 그대로 이탈리아로 이동시켜 동일한 목적론을 달성하도록 할리우드의
공식에 충실하게 재편된다. 당대는 물론이고 항시 '3'의 숫자는 신약 이후로 혹은 그 이전부터 각 지역의 원형적 균형으로
중심점을 구축하는 주술을 행했다. 전작에서 기술된 바의 흥행 요점은 인물 각자의 차별화된 사연이 해피 엔딩이라는
50년대의 이데올로기 강화에 복무하도록 코미디적 매혹을 지시했다면, 본편은 좀 더 드라마적 치장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본편은 '세 여인'으로 상기하는 리얼리즘이나 모던 시네마의 축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비록, 단 한 숏에서
로마의 빈곤한 거리가 삽입되지만, 영화는 감히 이를 전면화할 의사를 드러내지 못한다. 할리우드가 혹은 미국이
어떻게 제2차 전쟁과 그 이후를 통해서 유럽을 정치경제적으로 포섭했는지를 기억한다면 문화적 제국주의로서의
기획은 <로마의 휴일>을 본편과 중첩시키는 것을 본능화한다. 미국 여성들이 로마에 '비서'라는 직함으로 왔음에도
결국 로마의 귀족/빈민층과 결합을 위해서는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작가의 중개가 기적으로 행사되어야함과 같다.
감독의 흑백으로서의 40년대와 본편을 포함한 칼러로서의 50년대가 서사적 혹은 시선적 간극을 노출시키는
원인이 감독 개인 혹은 시스템 어디로부터 인유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40년대의 문제 의식이
제거된 채 평면적 투명성으로 질주하는 상업성은 환영할 수 없다. 다만, 본편이 전작과 다르게 40년대적 죽음을
소환하여 작가로서의 남성에게 시한부 선고를 지정하고 이를 결말부 해제의 동력으로 이용하는 것은 괘나
기이하지만 40년대를 상기시킨다. 전작에는 부재했던 예술의 자리가 죽어야함은 이국성에 대한 변론일까?
감사합니다. :)
추카추카 36 Lucky Point!
추카추카 5 Lucky Point!
단 평 : 남겨진 것은 생략된다
본질보다는 형식과 소재에 집착하는 텍스트는 흔히 어떤 정직한 관찰을 소멸시키거나 거부하는 태도를 계급성으로 치환한다.
본편은 전작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의 캐릭터를 그대로 이탈리아로 이동시켜 동일한 목적론을 달성하도록 할리우드의
공식에 충실하게 재편된다. 당대는 물론이고 항시 '3'의 숫자는 신약 이후로 혹은 그 이전부터 각 지역의 원형적 균형으로
중심점을 구축하는 주술을 행했다. 전작에서 기술된 바의 흥행 요점은 인물 각자의 차별화된 사연이 해피 엔딩이라는
50년대의 이데올로기 강화에 복무하도록 코미디적 매혹을 지시했다면, 본편은 좀 더 드라마적 치장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본편은 '세 여인'으로 상기하는 리얼리즘이나 모던 시네마의 축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비록, 단 한 숏에서
로마의 빈곤한 거리가 삽입되지만, 영화는 감히 이를 전면화할 의사를 드러내지 못한다. 할리우드가 혹은 미국이
어떻게 제2차 전쟁과 그 이후를 통해서 유럽을 정치경제적으로 포섭했는지를 기억한다면 문화적 제국주의로서의
기획은 <로마의 휴일>을 본편과 중첩시키는 것을 본능화한다. 미국 여성들이 로마에 '비서'라는 직함으로 왔음에도
결국 로마의 귀족/빈민층과 결합을 위해서는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작가의 중개가 기적으로 행사되어야함과 같다.
감독의 흑백으로서의 40년대와 본편을 포함한 칼러로서의 50년대가 서사적 혹은 시선적 간극을 노출시키는
원인이 감독 개인 혹은 시스템 어디로부터 인유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40년대의 문제 의식이
제거된 채 평면적 투명성으로 질주하는 상업성은 환영할 수 없다. 다만, 본편이 전작과 다르게 40년대적 죽음을
소환하여 작가로서의 남성에게 시한부 선고를 지정하고 이를 결말부 해제의 동력으로 이용하는 것은 괘나
기이하지만 40년대를 상기시킨다. 전작에는 부재했던 예술의 자리가 죽어야함은 이국성에 대한 변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