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의 자매(祇園の姉妹).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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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의 자매(祇園の姉妹).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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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미조구찌 겐지

'기온'은 교또의 한 거리의 이름

교또에서는 '게이샤(藝者, 예자)'를 '게이꼬(芸妓, 예기)'라 부른다고 함

 

영자막을 옮깁니다
 

 

Comments

10 헨토
감사합니다.
40 Daaak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1. 7. 22. 재감상


단 평 : 머물고 싶지 않다

기이한 장면이 있다. 그 전에 기존 글에서 전술한 바, 얼굴의 크기에 대해 말해야한다. 언니의 경우에는 기실
얼굴 자체가 표방되지 않을 정도라면, 동생의 경우에는 엔딩을 비롯해 얼굴이 변별 가능할 정도로 드러난다.
하지만, 어디에도 얼굴 자체의 클로즈업은 허가되지 않고 오직 가슴선 위 숏 구도만 가늠된다. 엔딩의 그것과
달리 중반부 동생의 얼굴을 말해야하는 이유는 여기서 출발한다. 그 곳에 과연 여동생의 얼굴이 필요한가?
필름의 상태 문제일 수 있겠지만, 그 순간에 얼굴을 제외한 주변부는 환몽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도 부가된다.

고객도 아닌 남성의 시선이 동생의 얼굴에 두 번 착지한 이후 남성은 갑자기 위작의 가격을 대폭 올려 받는다.
물론, 단순한 자본의 회수로 설명될 수 있지만, 거기에 왜 여성의 얼굴이 필요한가로서는 충분하지 않다.
자매의 이분법 그리고 모순적 동일성의 해제는 구태하고, 위작=게이샤의 등식화에서 자기 우월성 역시 그리
순탄하지 않다. 아마도 그 얼굴은 그 순간 혹은 그 단락에 속해있지 않고, 작품 전체를 위해 거기 물러서서
배치되어 있다고 해야겠다. 트래킹과 롱 테이크, 딥 포커스 등과 좁은 골목을 이탈해야할 그 무엇으로의 얼굴

간혹 실내를 깊은 심도로 오래 유지할 때의 리얼리즘은 극히 좀스럽다. 그 곳이 정서적으로 폐기되어야할
장소로서 내내 지정됨을 부인하지 않을 때, 카메라는 굳이 두 번이나 남성의 시선을 경유하여서라도 얼굴을
밝히고 싶은 욕망을 반복한다. 공간을 장소로 변경시키는 카메라의 운용에 반하여 그 순간에는 오직 얼굴만이
존재하며 굳이 그 공간을 지속시키지 않아도 되는 책무로부터의 해방감을 번뜩인다. 이 짧은 얼굴이, 게이샤
분장을 위해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는 작은 단락보다 기이하게 관객의 뇌리에 남겨짐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