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다르크의 수난 (The Passion Of Joan Of Arc , 1928) BluRay.720p.x264 - G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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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의 수난 (The Passion Of Joan Of Arc , 1928) BluRay.720p.x264 - G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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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의 수난 (The Passion Of Joan Of Arc , 1928)


 
 
 
 
 드라마 /프랑스  / 110분
  
           
감독 :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출연 : 마리아 팔코네티
 

 
 
 
 
고전을 만나는 우리의 자세.

영화사가 100년을 넘어가며 참 소중한 작품들이 감독이라는 장인을 손을 거쳐 우리와 함께 호흡합니다.
우리는 그 영화-영상예술을 살아있는 존재 그 자체로 느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 영상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앞에서 굳이  비가 죽죽 내리는 화면에 깨갱거리는 사운드와
무성을 견디어 가며 ‘고전’을 만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하며 분명한 이유는 그들은 100년이란 세월을 견디어 우리 앞에 선 ‘생명’ 이라는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거죠.
필름 안에, 동그란 DVD안에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슴 안에 살아 숨 쉬는  ‘생명’ 그 자체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작품과 만나는 ‘관객의 자세’입니다.
고전보기가 영화공부하기가 되는 순간 그 영화는 죽은 영화가 됩니다.
모든 예술은 공부할 학문의 대상이 아닌 살아있는 느낌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의 초목표가 카타르시스 즉 정신의 고양이라면 그 길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감성을 통한 느낌이지 이성을 통한 배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작.
서양영화사 바이오픽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인물은 ‘예수님’입니다.
양력이 그의 탄생을 기준점으로 기원전과 후를 구분되는 것만으로도 그분의 영향력을 알 수 있지요.
아마 그가 이토록 역사의 기준점이 되고 영화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인물이 된 이유는
그가 인류를 위해 행한 사랑과 희생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결같이 한자리 계십니다. 그를 오고가게 하는 건 그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종교와 또 종교인들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지요.

그 다음이 바로 ‘잔 다르크‘입니다.
100년 전쟁에서 활약했던 이 소녀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역시 신의 뜻과 자기 신념을 위한
‘희생과 열정’이 너무나도 여실히 느껴지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열정>>에서는 이 둘을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Close Up.
모든 영화사 책에 나온다고 할 정도로 이 영화에서 사용된 Close Up은 유명하며 또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영혼의 클로즈업<벨라 발라즈> 부터 얼굴의 돌림과 외면의 놀라운 기록<질 들뢰즈> 심지어 <르네 마리아 팔코네티>를
모르고는무성영화를 말하지 말라 라고까지 말한 이도 있습니다. 다 좋습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런 기록들은 우리의 영화보기를 방해하는 측면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느끼기에 미리 너무 많은 사족들을 접한다는 거지요.
우리 Feel林모임에서는 이런 의견들은 제쳐두고,우선 나의 느낌으로 이 영화를 만나봤습니다.
 
 

 
처절한 Close Up.
'Passion'이란 단어는 열정과 수난의 뜻을 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칼 드레이어의 삶도 열정과 수난이 공존했었지요.
이 영화 Close Up역시 아름답다고만 보기에는, 찬사만 날리기에는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름다움을 잡아내기 위한 감독의 감독의 처절하기까지한 고뇌가 같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Close Up은 말 그대로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겁니다.
카메라 프레임 구분 중 정서를 나타내는 가장 강한 표현법이죠.
기초적으로 영상을 구성하는 프레임을 크게 세 개로 나누면
Full Shot - Medium Shot- Close Up입니다.
Full Shot이 전체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이라면
Medium Shot은 거기에 속한 대상을 잡아내고,
Close Up은 그 대상의 정서 나타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구분일 것입니다.
 
 

 
이 작품은 보면 볼수록 처절함이 느껴집니다. 감독이 잔의 내면을 표현하기위해,
그것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 관객에 가슴에 그 심정을 전하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이 필름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칼 드레이어는 스텝을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트장 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벽을 허물면서까지
카메라의 위치를 조정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이 인물들의 Close Up입니다.
우리는 이 영상을 만나며 감독을 느꼈을 고통 - 인물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가기위해
들이밀고 또 들이밀 수밖에 없었던, 어찌 보면 처절하기까지 한 그 몸부림을 같이 느껴봐야 합니다.
 
 

카메라.
쉽게 간과되는 것이 주 구성이 Close Up인 영화이므로 카메라의 움직임이 단순하다는 판단인데
이 영화 속 카메라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또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후반 부 화형 장면에 가면 노련하고 유려한 카메라 워킹을 볼 수 있습니다.
Close Up역시 마찬가지로 같은 얼굴을 잡더라도 카메라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영화와 <<뱀파이어>>에서 같이 호흡을 맞춘 카메라 감독 <루돌프 마테>는 줌 인-아웃, 펜, 틸 등을 사용하여
계속해서 프레임 안에서의 순환을 유도합니다.
주 인물이 뒤에 있는 배경인물들의 움직임 역시 프레임 안에 순환을 돕습니다.
또한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인물 동선을 만들어내고 카메라의 위치를 조정하는 것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전색필름의 사용과 배경색의 단순화로 전경을 통한 정보-정서 전달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습니다.
설정샷을 뛰어넘고 Close Up으로 넘어가는 것도 빈번히 볼 수 있습니다.
 
 

 
땀과 침과 피의 드라마, 얼굴.
잔다르크가 목까지 채운 단추는 마치 그녀의 신념 같습니다.
그녀의 얼굴에 흐르는 땀과 성직자들에 의해 뱉어진 침, 결국 불속으로 연기되어 타오르는 그녀의 얼굴은
영화사의 오래 남을 페이소스입니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각도를 바꾸어가며 잔을 담아내지만 결국 감독이 담아내려 한 것은 하나-
잔의 열정과 수난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고작 프레임 안에서만 사는 것이 아닌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우리 가슴 속으로 전이되어 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입니다.
 

 
영화의 구성.
이 영화는 (삼일치의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실제로 잔의 제판은 5~6개월 정도 진행됐지만
감독은 가장 극적인 마지막 하루를 잡아냈고 또한 그는 이 하루를 담아내기 위해 1년 반이란 시간을 작품에
할애합니다.
 
또 볼만한 것은 수직과 수평 개념을 활용하여 인물들간의 정서를 조정하며 표현하고 있습니다.
재판장 안으로 들어가는 카메라는 아주 길게 트레킹하고,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남자로 구성되어
수평적인 남성의 세계를 보여주며, 그곳에 서있는 잔과 뒷 배경의 인물들을 통해 잔에게 솓는 이미지를 부여하며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수직적인 개념으로 잡히게 합니다. 이 후 등장하는 재판관과 성직자 고문관 역시
계속 병렬적인 인물 배치와 평행적인 카메라 이동으로 이들 인물의 심리를 표현해 줍니다.
 
 
 
예수님 그리고 잔 다르크.
고문실에서 가시면류관을 쓰는 잔이나 옆구리에 화살을 꽂는 모습은 감독의 철저한 의도입니다.
또한 후반 들어 등장하는 불구자나 광대들 역시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를 영접한 것이 천한 신분이었던
세리나 어부, 창녀였음을 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특히 모임에서 많은 이야기가 나왔던 것은 화형장면에서 등장한 많은 십자가였습니다.
감독은 후반부 거의 매 프레임에 십자가를 같이 잡으며 잔의 죽음을 예수님과 동일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십자가 위로 나는 새떼들의 서정적인 표현이나 그녀의 죽음 앞에서 젖을 먹는 아이를 보여주며
이 죽음이 새로운 탄생이 될 것임을 간접적으로 일러주기도 합니다.
마지막 십자가에 매달려 연기가 되는 잔의 모습에 아래서 위로 스크롤 되는 자막은 감독이 영화를
마무리 짓는 노련한 방법이자 또한 그 영혼에 대한 경의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시 고전 앞에서.
다시 맨 처음 했던 고전에 대한 논의를 이 시대에 맞추어 생각해보면
앞으로 100년 뒤에는 어떤 영화가 살아남을까요?
100년 뒤 관객과 만날 지금 우리시대의 영화는 어떤 작품일까요?
니미 뭐 같은 영화들이 참 많이 만들어지는 이 때, 고전은 참 따뜻하게 우리 손을 잡아줍니다.
누가 만들기를 기대하기보단 우리가 만드는 편이 속시원 하겠지요.^^
우리가 돌아가고 100년 뒤,
지금의 우리와 같이 어렵게 구한 영상에 환호하고, 떨리는 손으로 Play 버튼을 누를  관객을 기대해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먼저 그런 관객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작품이 고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진실에 생명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그 생명력을 대하는 자세가 바로 고전을 만나는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하겠지요.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열정>>은 이런 우리의 물음에 좋은 대답이 되어주었습니다.
 
 

Comments

14 토렝매냐
감사합니다
1 씨네스터
감사합니다
3 선키드
감사해요
2 박재선
좋은글입니다
한글자막 을 기대하고있습니다!
9 새겨울
자료 감사합니다.
4 이든Eden
수고햐셨습니다~~
1 임스빠
정말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