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기 (Lonely Lane) 나루세 미키오 감독 다카미네 히데코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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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 (Lonely Lane) 나루세 미키오 감독 다카미네 히데코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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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S 반딧불이™
덕분에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영화를 또 한편 보게되는군요. 고맙습니다.
1 아메닉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잘보겠습니다.
26 로카롤라
고생하셨습니다~
13 riverpitt
제작자분들의 노고로 나루세 미키오 감독이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작품들을 접하게 되는군요  정말 수고많으셨고 감사드립니다....
23 여름향기
감사합니다... 잘 보겠습니다...
2 걸인
칠년 전에 본 이후로 다시 보고 싶었던 영화입니다. 감사합니다...
7 kearn
감사합니다~! 잘보겠습니다!
4 탱이vv
자막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1. 6. 11. 재감상

단 평 : 무엇을 보고있는가라는 성숙

문득 1956년 미조구치 겐지, 1963년 오즈 야스지로의 죽음이 본편에 중첩됨은 <부운>의 그것과는 달리
본편이 감독 세계의 거의 유일한 일대기이자 엔딩의 잠-꿈-죽음에서 인물이 혼자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와 더불어 본편의 내부 본문의 결과 완연히 차별화된 수미의 시선 숏이 또한 이 정감을 강화시킨다.
오프닝에서 소녀는 정면이라기보다 사선에 가까운 쪽으로 성난 시선을 던지지만, 정작 다음 프레임에서
그 대상이 무엇인지 보여지지 않는다. 다만, 대사와 공간 이동의 상황이 이 분노를 점층시킬 뿐이다.

즉, 어딘가를 인물이 '바라봄' 이상의 직시를 행할 때 정작 카메라는 소녀라는 연령에 부합하려는 듯
차마 현현의 억압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이에 반해 엔딩은 시선의 담지자가 먼저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닿은 풍광이 프레임을 이동카메라로 보여진다. 오프닝의 생략에 거짓과 국가의 짝패가 있다면
엔딩에서는 산, 바다 등의 자연만이 존재하며 비로소 그것들이 보여질 수 있다는 당연한 자신감이 있다.
꿈 혹은 플래쉬백으로서의 엔딩에서 카메라는 재차 감독의 세계 속 결말인 롱숏의 인물 후면을 반복한다.
정착한 소설가의 끝꿈은 여전히 방랑하는 가족의 뒷모습이 배치됨으로서 현재의 안주를 기실 부인한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 인물을 담당한 주연배우의 연기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그가 원작 혹은 원작자의
외모와 유사하게 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이로 인해 본편에서 인물들 중 남성 2명은 미남으로 호명된다.
기존에 여성의 미모가 준거화된 것에 반해, 본편의 인물은 표정 너머 일그러짐을으로 얼굴을 보존한다.
이 지점에서 그간의 남성 무능력과는 달리 오히려 남성이 주연으로서의 여성과 접촉하는 순간으로인해
무력화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발생한다. 본편에서 인물이 뚜렷한 인장으로서 관계하는 연인들이
작가임은 인물의 리얼리즘적 미학관과 얽혀 시선과 얼굴이라는 배제와 추함으로부터 예술을 질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