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등 (Gaslight, 1944)

자막자료실

가스등 (Gaslight, 1944)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786888
 

* 제작자 : 미상

* 싱크 전면 수정, 맞춤법 교정

* imdb rate : 7.9/10

* frame rate : 23.976 fps

* run time : 1:53:47

Author

Lv.19 19 scndtnn  로열(4등급)
65,091 (18.6%)

시련은 삶에서 정말 의미 있다.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시련을 겪을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한 번이 아닌 두 번 이상 몸소 체험해야 한다. 어둠이 그렇게 경멸할 만한 것은 아니다. - 나오미 왓츠 -

 

Comments

S 궁금맨
명작~
고맙습니다.
28 godELSA
감사합니다.
11 방콕맨
감사합니다~.
10 헨토
감사합니다~!
GIVE 50 MP 24 경구리
고맙습니다. 영화 잘 볼게요~
14 cowboy
감사합니다.^^
S rayphie
고맙습니다.
1 chika
고맙습니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S 컷과송
2020. 10. 11. 재감상

단 평 : 전유는 재전유로 소멸된다.


범죄로서 가스라이팅을 차치한다면 본편은 <레베카>와 <살인전화> 사이에 위치시킬 수 있다.
40년대 헐리우드가 연약한 여성으로의 가학/피학을 무대화했을 때 이를 전쟁과 연결짓거나
또는 여성이 가진 자본에 대한 노동자 남성의 시기를 스릴러화하여 대리 쾌감을 제공했는가는
논의된 바 있다. 혹은 조지 쿠커의 세계 안에서 독특하게도 표현주의적 색채와 장르물의 압박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진술할 수도 있다. 페미니즘적 시각에서의 남성 조력의 한계는 물론이다.

오프닝에서 가로등에 점화하는 남성으로 시작하여 엔딩에서 실내등이 아닌 밖의 새벽빛을
기다리는 남녀의 서사 관습성은 프로메테우스의 남성성에 대한 반어를 첨부한다. 내부라는
공간성에서 본편은 구조주의의 폐쇄성과 그 내부와 배후에 있는 진실에의 갈망을 조율한다.
여성이 남성의 호명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림자로만 제시될 때 닫힘의 표피는 극대화되고
남성이 음영으로 다가설 때의 위협은 이를 더욱 철저히 보충한다. 가스등은 잔인한 연료다.

흥미롭게도 부부 모두가 예술의 전면에 서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지점을 감독 개인과 중첩하면
본편은 자괴감의 일기가 되면서 외부의 개입을 희망하는 자의 침묵일 수 있다. 실제로 남성이
경찰과 격투하는 꼭대기방의 과정은 관객에게 보여지지 않는다. 내부로서의 여성은 관객과
동일시되며 그 과정에의 시선에의 참여를 허락받지 못하는 것이다. 여성의 결기는 남성이
포박된 이후 가부장제가 구사했던 전유의 구조성을 재전유하여 그에게 희롱을 투사함에 있다.
결국 본편은 밖과 안의 쟁투와 조응이지만 포스트모던의 폐기된 주체를 끝내 부여잡는다.
9 공처가
감사합니다.
40 Daaak
감사합니다.
1 oulala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