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선원 (Two Tars.1928) 1CD 141MB

자막자료실

두 선원 (Two Tars.1928) 1CD 141MB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575449
 

Comments

S 컷과송
2019. 8. 28 감상

올리버 하디 (Oliver Hardy 1892-1957), 스탠 로렐 (Stan Laurel 1890-1965)

단평 : 아무도 (몸)싸우지 않는다.



​로렐과 하디의 몸동작은 거의 그대로 양훈, 양석천을 비롯한 남성 콤비에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본편에서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대비되는 신체를 활용한 코미디를 시전하지 않는다.

이 지점은 확실히 기이하지만, 신체를 희롱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영화 시작 전 경고문 자막에서 돌출되듯이 본편은 나름 20세기초 기계문명을 경계한다.

그로 인해 본편은 전반부의 육체의 슬랩 스틱과 후반부의 자동차 분해로 명백히 구분된다.



모든 희극이 그러하듯이 예상을 뒤집는 실패의 반복은 그것이 익히 예상됨에도 웃음을

유발하는데, 이에는 인간 희극의 기본 요소인 존재 불안에 대한 근심의 해방이 도사린다.

콤비 캐릭터로서 뚱뚱이와 홀쭉이는 아니지만, 이들 로렐과 하디는 그들의 면모에서 발산된

미세한 차이의 내포를 연쇄시켜 관객에게 '따로 똑 같이'의 기이한 추상성을 전달한다.

가령, 로렐이 실패하 이후 하디가 그 자리를 자신감있게 교체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본편에서 여성들이 무력하게 소비되고 퇴장하는 난감함을 배제한다면, 후반부의 자동차

분해 장면은 과도하게는 현대 영화의 수평 트래킹의 자동차 트랙을 연상시킬만큼

그 퍼포먼스의 이데올로기가 명확하다. 의외로 많은 배역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의

구심점으로 몰입하는데, 이는 자동차=현대 문명이라는 도식의 파괴에 완전히 집중된다.

20세기초 무성영화 시기의 슬랩스틱은 이미 대공황의 전조와 전간기의 불안을 감지하고

이를 특정되지 않는 대중에게 발산하도록 허용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동차를 넘어선

거대한 기차 앞에서 모두가 후퇴한다. 로렐과 하디조차 풀죽은 갓길의 전진만 가능하다.

​본편의 좌충우돌이 당대의 객석을 환호하게 했다면 이는 온전히 자동차의 고행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