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타이트 (Uptight,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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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타이트 (Uptight,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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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스 닷신이 존 포드의 밀고자 <The Informer, 1935)를 리메이크한 작품.

리메이크가 더 나은 경우로 보임.^^




"위 출처는 커뮤니티 '씨네스트'입니다. http://cineaste.co.kr 이곳에 오시면 다양한 피드백과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아울러 스크립트를 이용한 불펌을 금합니다.

그리고 타 사이트 업로더 여러분께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작권 문제로 삭제되더라도 가급적이면 퍼가시는 것보다는 링크로 연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Comments

S rayphie
고맙습니다.
S 컷과송
2024. 3. 25. 감상

단 평 : 추락의 독백

선배의 <밀고자>로부터 33년이 지난 이후에 제작된 본편의 출발점은 줄스 다신의 세계에 익숙한 이들을 잠시
멈첫하게한다. 40년대말부터 응시되었던 자본주의 내 추락 이미지가 철저히 계급적인 것이었다면 본편은
그 출발점을 다큐적 상황인 1968년도의 킹 목사 암살의 거리 장례식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표피적으로 인종을
작품에 소환시킨다. 이를 68에 대한 동시대적인 감독의 응답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본편은 그와 달리
선배의 노선을 좀 더 과격하게 연극화하는데 주력한다. 도시 자체보다는 캐릭터의 본래적 분열이 중핵이다.

그러므로, 인물을 둘러싼 흑인 집단 내부의 정치적 갈등 양상은 킹 목사와 말콤 X를 연상시키기보다 타협과
본능이라는 이분법적 구간 하에서 캐릭터가 예정된 수순으로 파멸되는 장소성에 가깝다. 지시하는 바는
정치성이라기보다 까뮈의 <이방인>과 베르톨루치의 <순응자> 사이를 방황하는 실존주의와 구조주의의
간극일 것이다. 가령, 인물의 첫 등장이 집 내부에서 창 밖으로 고함을 내지르며 실행을 연기하자는 동시대적
거부라는 점이 알콜 중독과 연관되면서 그가 왜 과거의 동지애로부터 탈락되었는지 해설되지 않을 때 본편은
사회 드라마가 아닌 비극적 인물에 국한된 고전 서사로 오히려 퇴행한다. 말하자면, 인물에게는 출구가 없다.

전술한 바처럼 본편을 만일 68에 대한 감독의 동시대적 응답으로 해제한다면, 인물이 취하는 혹은 그를
둘러싼 관계들은 서사적으로 납작하기 때문에 불신된다. 이는 신좌파의 구호를 반영하지 못하는 구좌파의
비방처럼 들린다. 인물이 백인들과 왜곡된 거울에서 신체를 분해시키는 것이나 길거리 연설 등의 삽입 등은
비루한 기호 이상이 되지 못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텅 빈 연극 무대로 변명되는 인물의 기이한 고립은 68의
함성을 거세된 남근의 추락으로 반복하는 데 그친다. 혁명도 구조도 부재한 자리에 비주체의 신화만 남는다.
4 늘배고픔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