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안개에 젖어 (The Deadly Trap, La Maison sous les Arbres, 1971)

자막자료실

파리는 안개에 젖어 (The Deadly Trap, La Maison sous les Arbres,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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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들어와보니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 계시는 것같아 만들어 보았습니다.

영어와 불어가 섞여 있는데, 영어부분 자막과 불어부분만 영어로 번역한 자막이 따로 있어서 둘을 구해 번역하였습니다. 자막이 아예 없는 불어부분도 있었는데 어설픈 자막기도 돌려보고 짧은 불어실력도 동원하여 번역하였습니다.

불어 제목은 "숲속의 집", 영어 제목은 "죽음의 덫" 쯤 될텐데 우리나라 상영제목 "파리는 안개에 젖어"가 가장 그럴 듯합니다. 50여년 전 봤던 이 영화의 내용보다는 음습한 센강의 분위기와 파리에서 사는 이방인 페이 더너웨이의 우울한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 영화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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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safellee
저 제목이 어찌 우리가 붙힌 제목이겠습니까? 일본이 만든 제목이죠....1971.パリは霧にぬれて (파리와 키리니 누레떼->파리는 안개에 젖어...)
과거 원제와는 동떨어진 영화제목들은 대부분 일본이 붙힌 제목이죠. 이를테면 원제, 1975,Operation Daybreak->暁の7人(아까쯔키노 시치진)->한국제목 새벽의 7인, 뭐 이런 식이죠. 7인의 사무라이 때문인지 일본은 7인을 좋아하나봐요.
18 바앙패
수고 하셨습니다 ~
7 kytice
요청게시판에 자주 올라와서 저도 궁금했던 영화였는데 자막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페이 더너웨이 배우님 좋아하는데 기대됩니다.
31 백두
감사합니다.
2024. 5. 15. 감상

단    평 : 태양이 빛나는 날이 올까


​1964년작 <붉은 사막 Il deserto rosso>과 1973년작 <지금 보면 안돼 Don't Look Now> 사이에서 본편을 마주하는
것은 편리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체험이다. 오프닝에서 즉각적으로 비롯되는 엄마와 소년 아들, 그리고 노란색 상의는
바지선에 탑승하기 전부터 마치 할리우드 고전물에서 여배우의 얼굴을 위해 배정된 은은한 조명의 촬영법을 뒤집어
차용한 안개에 서린 채, 모호한 모던 시네마에 대한 뒤늦은 예후처럼 다가온다. 모든 것이 시시각각으로 불안하고
가족은 물론 외부인들조차 안전하지 못하다. 매끄러서는 안된다라는 지상 명제처럼 중산층은 음모에 휘말린다.

​전작의 '맥거핀'의 성명을 본편에서는 적극적으로 히치콕이 차츰 물러나는 시기에 소환하지만, 여기에는 더 이상
프로이드의 그늘이 없으며, 단순히 부부간의 관계 회복으로 제한된다. 즉, 모던 시네마에서 끝내 머물고자 했던
풍경의 폐허가 서사가 진행되면서 실내에 국한됨으로서 카메라는 밖의 정황으로부터 내부를 질식시키지 못한다.
실마리는 간편하게 정신과 상담으로부터 도출되거니와, 조종자이자 감시자로서의 영화 밖의 현실로서의 아랫집
여인은 돌변하여 인물에 동화된다. 이것을 과감하게 영화로의 매혹이라 하기에는 해제의 고리가 헐겁기만 하다.

​불필요한 외부 장치일 수도 있지만, 어디든 개입할 수 있는 중산층 이데올로기의 위협요소로서의 자본주의는
본편에서 최종까지 소멸되지 않는다. 물론, 이는 당연한 기준선이겠지만, 이로부터 야기되는 국가의 무력함도
사회적 시선 외부로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마치 동화와도 같은 엔딩에서 어린 딸이 그리는 그림에서 마지막에
둥근 태양이 덧붙여지는 것은 본편이 60년대 모던 시네마와 결을 같이 할 수 없음을 진술한다.  태양조차
마치 안개에 가리운 듯 하지만, 미래로서의 소녀가 덧붙인 해는 영원히 가족을 향해 비출 수 있을지 저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