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리에 빠져
언제 봤는지 모르는 이 영화를
다시 한번 감상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쟝 갸뱅
쥘 베리
자끌린느 로랑
아를레티 주연
마르셀 꺄르네 감독의
먼동이 트다 입니다.
(원제 Le jour se lève 는 르주셀레브 "날이 밝아오다" 이며
영제 Daybreak 는 불어의 Aube "오브" 새벽도 있고 스페인어 Amanece "아마네쎄" 동 트다도 있는데
심플하긴 하지만 너무 격조 없군요... ㅠㅠ)
이 영화는 참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군요... (IMDb 7.8)
쟝 갸뱅의 쓸쓸한 표정의 내면 연기는 물론이고
그를 더 두드러지게하는 쥘 베리의 간악한 악당 연기에...
비교적 짧고 단순한 스토리 속에서 흐르는
두 여배우의 열연도 돋보입니다.
쟝 갸뱅의 코가 더 작아 보이긴 처음 입니다. ㅋㅋ
첫 장면에서 꽃을 품고 등장하는 아름다운 그녀
자끌린느 로랑 (1918-2009)
누군가 쟝 갸뱅 의 팬이 그린 듯한
느낌이 잘 살아있는 마지막 장면...
그래도 단연 압권은 악역 전문배우
우리의 쥘 베리 (Jules Berry, 1883-1951)
더럽고 치사한 역할은 모두 그에게로!
쟝 르누아르 감독보다 열살 이상 어리고
더 귀여워 보이는 우리의 꺄르네 감독님 (1906–1996)
이 영화 바로 전해 1938년 쟝과 찍은
"안개 낀 부두"는 어땠나요? (역시 IMDB 7.8)
같은 해 감독의 "북 호텔"이 더 땡기긴 하지만...
PS:
레드 엘마님 자막을
rayphie 님께서 잘 정리해 주셨는데
중간에 경찰들이 대화하는 두 부분이
영자막으로 되어 있어 새로 채웠고
(영자막도 좀 이상...)
송구스럽지만... 한글 자막도 서 너군데
좀 뜬금없는 간단한 오역이 발견되어
다시 영자막을 80% 검수하여
오타를 포함한, 이름, 지명, 존댓말, 말투
말마무리 등을 새로 다듬은 약 11% 수정 작업 입니다.
(작업자 님께서 후반에 집중력이 좀 떨어지신듯...)
어쨌든 선작업자 님들께도
심심한 감사를 올리며
릴은 블루레이 1080p 2.51 GB mkv
Sendy 로 일주일 링크 하오니
아직 못보신 분들께만 강추 드립니다.
즐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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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추카추카 19 Lucky Point!
30년대 후반 장 가방이(물론 이후에도 좋은 영화 많이 나왔지만) 그때 전성기라 그런지 영화가 몇 있던데... 같이 잘 볼께요.
단 평 : 꼭대기방의 기상시간
밤은 에너지를 보충시킨다. 아침과 새벽을 구분하는 기준이 만일 일상의 준비라면, 새벽은 그 열기를
확인함으로서 자신을 존재화시키는 순간이 된다. 아침은 이를 노동과 연계시키는 기계적인 시간이다.
말하자면, 새벽은 발기의 단락이다. 이는 생물학적인 본능이 스스로의 직립을 심리학적으로 제공한다.
오프닝에서 마차는 스크린 중앙을 직진하다가 양갈래의 길에서 한쪽으로 이동하면서 프레임은 장소를
전시한다. 관객은 거의 홀로 보이는 수직의 건물로도 부족한 듯 측면의 철제 구조물까지 직시하게된다.
본편의 서사는 (전작 두 편과 비견하면) 앙상하다. 공유되는 지점은 인물이 이미 스스로 내재된 과잉의
분출을 다양한 관계 하에서 발산하는가인데, 본편은 이에 대해 매우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물론, 그에
대한 대체물로서 남근성은 노골적으로 건물, 분사기, 권총 등을 경유하면서 인물을 유지시키고자 한다.
문제는 그것이 남근성의 내재화가 아니라, 폐쇄로 반작용하는 것에 있다. 여인은 꽃을 들고 찾아왔고,
적대자는 채찍의 길들이기를 선보인다. 이 사이에서 인물은 고전적 고립의 낭만적 광기로 치닫게된다.
이를 환영화하는 장치로서 본편은 오버랩에 의한 플래쉬백을 취하는데, 그 중첩을 오래 지속시킨다.
그러므로, 현재와 과거는 미래 앞에서 단절되지 않고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스스로가 자신을 감금함을
진술한다. 대중의 영웅화와 국가의 진압 대상 사이에서 인물이 행할 바는 자기 원인에로의 회귀다.
꼭대기는 그래서 위험한데, 누구의 목소리와 얼굴도 즉각적인 수평으로 전달되지 않거니와 자신의
음성도 들려질 수 없다. 죽음은 재차 예비되고, 주체일 수 없는 자에게 예외란 없다. 발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