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들리에 박사의 유언 (The Testament Of Doctor Cordelier, 1959) - 맞춤법 띄어쓰기 오탈자 수정 자막

자막자료실

코르들리에 박사의 유언 (The Testament Of Doctor Cordelier, 1959) - 맞춤법 띄어쓰기 오탈자 수정 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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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오타 발견 : 지난간 - 지나간)


아래 외지인 님께서 변환해 올려주신 srt 자막의

맞춤법, 띄어쓰기, 변환 오류 오탈자를 수정했습니다.

srt 자막을 smi 형식으로 변환한 자막도 추가했습니다.

DVD 자막이라 다른 영상엔 싱크가 맞지 않습니다.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631082 



-


* 수정 내용


짖값(죗값) 등 변환 오류  

대화 장면의 하이픈 기호 삽입 및 가독성을 위해 한 칸 띄우기


(수정 전)

여기 앉으세요

-고마워요 


(수정 후)

- 여기 앉으세요

- 고마워요


기호, 띄어쓰기 오류 등 수정


·부인은 잘 계시죠? (하이픈 기호 오류)

- 그럼요 


변환 오류 


88

00:10:52,200 --> 00:10:55,220

여기로 온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보진 못했죠


224

00:23:19,230 --> 00:23:23,170

머리 색깔이라도

기억 안 나요?

새기




-



sub 자막 상태가 괜찮았는지

단순 변환만 하셨다고 하셨는데도 

수정할 곳이 엄청나게 많지는 않았네요.

영화 다시 보며 중간 중간 수정하느라 3시간쯤 걸린 듯. ㅎ 


자막 변환해 주신 외지인 님께 감사드립니다!


내일은 <라 마르세예즈> 다시 보며 

이미나에게로 님 변환 자막을 확인해 봐야겠네요.

편한 밤 보내세요! 






  

 

Comments

20 pupukim
감사합니다.
18 뉴스페이스
고맙습니다
26 얼기설기
감사합니다
S 영화이야기
Jean Renoir - Le testament du Docteur Cordelier (1959)

추카추카 8 Lucky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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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스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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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스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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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슈샤드
이런 티키타카 아주 좋아요~~수정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29 언제나
고맙습니다.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홀리 걸>(2004)을 보고 나서 영화 도슨트가 영화에 나오는 테레민이라는 러시아 전자 악기에 대해 한참 설명하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에 악기 모습이 등장해서 어쩔수 없이 이야기했겠지만 사실 테레민을 영화에서 먼저 사용한 사람이 히치콕이었고 그 영화가 <스펠바운드>(45)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장 르누아르의 <코르들리에 박사의 유언>에는 테레민과 또다른 전자 악기 옹드 마르트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르누아르가 창의적으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소설에서 하이드에 해당하는 인물인 오팔이 등장할 때마다 나오는 가슴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기묘한 사운드가 바로 그 악기의 소리입니다. 이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한 분이 우리에게는 '고엽'(Autumn Leaves)으로 잘 알려진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 조셉 코스마입니다. 코스마는 앙리 베르누이 감독의 <하찮은 사람들>(aka <애련>, 55)에 이 악기를 본격적으로 활용하지요. 코스마가 영화 음악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르누아르의 <랑주씨의 범죄>때부터입니다. 그는 르누아르의 미국 시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했습니다. 르누아르의 마지막 작품 <장 르누아르의 작은 극장>이 한참 촬영 중이던 1969년 8월에 코스마는 세상을 떠납니다(르누아르는 10년 뒤에 사망). 그러니까 조셉 코스마는 르누아르의 영화로 데뷔를 했고 마지막 르누아르 영화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코스마가 전자악기 옹드 마르트노로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정말 절묘합니다. 사운드를 중심으로 이 영화를 한번 감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알다시피 <코르들리에 박사의 유언>은 TV 방송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작품이고 르누아르는 텔레비전 방송처럼 하나의 씬을 여러 대의 카메라와 마이크로 동시에 찍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것이 영화계에 반발을 불러일으켜 르누아르를 영화의 배신자로 칭하는 일까지 생겼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르누아르는 이 영화와 같은 해에 만들어져 더 일찍 개봉된 <풀밭 위의 식사>도 동일한 방식으로 찍었습니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상업적 실패하자 복수의 카메라로 하나의 씬을 촬영하는 방법은 더 이상 유지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대의 카메라로 찍고 여러 대의 마이크로 녹음한다는 기발한 발상을 영화에 시도한 르누아르는 예전부터 기술면에서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지향성 마이크가 아직 없던 시대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를 동시녹음으로 촬영한 <암캐>(31)는 '지금 여기'의 소리를 모두 수록하겠다는 녹음방법의 혁신을 가져왔던 작품입니다. <십자로의 밤>에서 <게임의 규칙>, 이어지는 미국 시대에 걸쳐 발견되는 '눈 앞에 어떤 것이라도 모두 단 한번에 포착'하기 위한 원 씬 원 컷 촬영. 사운드와 촬영에서 선진성이 융합된 것이 텔레비전적인 방법을 차용한 <코르티에 박사의 유언>입니다.

르누아르가 이 방법을 채택한 것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배우가 하는 연기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카메라맨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니까 르누아르는 모든 것이 감독의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데이빗 린이나 훨씬 뒤에 스탠리 큐브릭과 전혀 다른 감독이었지요. 영화 속 드라마와 영화 밖의 세계가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스며드는 세계, 그것이 아마 르누아르가 추구하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첫 장면을 르누아르가 방송국에 도착해서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하면서 영화의 외부를 보여주는 내러티브를 선택하는 것도 이런 이유로 보입니다. 르누아르는 배우의 연기를 촬영한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연계에서 동물을 상대하는 것처럼 배우에 대해서도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지않을까'.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르누아르는 그 당시까지 나온 최고 수준의 방법으로 픽션을 다큐멘터리처럼 찍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텔레비전의 방법을 영화로 끌어들였던 것이지요.

장 루이 바로가 연기한 '흉악한 채플린'이라는 오팔의 거침 없는 움직임은 수많은 카메라로 다큐멘터리처럼 찍어야만 했던 필연이었던 것입니다. 영화가 개봉된 그 당시에 <코르틀리에 박사의 유언>은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같은 소수의 영화 청년들이 부라보를 외치며 말했습니다. '우리 대장님의 혁명적인 순간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스스로 방법론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영화의 역사를 되짚어 봐야 합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59년에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와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가 연이어 촬영되었고 드디어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사는 이 해를 누벨바그의 원년으로 기억하지만 그 파도를 일으킨 것은 <코르틀리에 박사의 유언>이라는 해저 지진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의 부족한 글이 위대한 영화를 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20 암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카추카 5 Lucky Point!

16 m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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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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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9 소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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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drea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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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