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중왕 (King Of Kings,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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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중왕 (King Of Kings,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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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D 자막 3개 합치고 싱크 조정

 

Comments

30 하얀벽돌
고맙습니다.
9 소구스
감사합니다
4 싸잉
감사합니다.^.^
GIVE 3 MP 16 TylerDurden
고맙습니다.
5 혀니마세상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S 컷과송
2024. 4. 16. 감상

단 평 : '다움'과 '되기'의 사이에서

서사가 철저히 투명함에 복속하여 관객의 기대에 부응할 때 주체는 현상 저 너머에 대한 자의적 탈주를 감행하지 못한다.
이를 곧 미학의 경계라고 하거나, 흥행 전선의 기준점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본편에서 누구를 감독의 기존 세계의
인물이라고 지정할 수 있을지 주저하게된다. 캐릭터들의 성격화가 부재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확연히 부각되었다고
할 만큼 당당하지 않다. 가령, 살로메가 세례 요한의 수급을 원한다고 할 때, 이같은 상황이 연극화로 진술되기는 하지만,
그 내부에 어떤 내면적 충돌이 작용하여 발화되었는지 인지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살로메는 누구를 대변하고 있는가?

유다와 바라바는 각자 예수의 반대편이나 그 경계에 선 인물로 포장되지만, 결말부 예수의 죽음 이후에 그들은 자신의
서사적 위치를 상실하고 그 존재론을 연장하지 못한다. 이는 예수를 종교인으로 지각하는 로마 군인이나 지배자층도
마찬가지다. 그 정점에는 예수, 12제자, 마리아 등의 종교인들이 있는데, 특히 예수는 의도적으로 시선의 대상이
될 뿐이며 가능한 시선의 주체로서 관객을 이입시키는 자리를 배정받지 않는다. 이는 물론 초월적이며 역사적 지위를
대중과 분리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바일 것이다. 그 결과로 본편의 캐릭터들은 누구도 서사 너머로 이행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되기'의 가능성과 접촉력은 발휘되지 못하고, 그저 '다움'의 한계에 갇혀 허우적거린다. 문제는 이같은
평면성이 관객을 매혹시키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감독의 50년대 영화들에서 돋보였던 희생양으로서의 정체성이나
비정, 분노 등으로 표출되던 내재적 불안은 본편 내부에 누구에게도 깊숙히 책정되지 않았다. 예수는 물론, 유다는
자신을 경계-대상화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책정될 뿐이다. 전작 <야생의 순수>에서 드러난 문화로 변론된
단절에서 한발 더 나아가 종교로서의 단절로 60년대 할리우드를 몽매화한다. 왕은 그저 편협한 기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