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케년(Daisy Kenyon, 1947)

자막자료실

데이지 케년(Daisy Kenyon,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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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렛님 요청자막입니다. 


<분노의 포도> 주연을 따는 대신에 

헨리 폰다는 7편을 의무적으로 찍어야 했다죠.

이 영화 보면서 그게 떠올랐는데, 역시 그렇더군요.

주연도 아니면서 그다지 하고 싶지도 않았던 역이었을 겁니다.


다나 앤드루스의 내면 연기가 매우 훌륭합니다.

제가 피해다니던 조안 크로포드도 의외로 괜찮았어요.

영화에서 매우 현명하고 마음이 넉넉한 여자로 나오는데, 잘 어울려요.

얼굴이 너무 나이들어 보이는 게 흠이지만요.


오토 프레밍거 감독은 노년에 이 영화를 두고 "기억도 안 나"라고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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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S dreammaker
감사합니다.
GIVE 3 MP 16 TylerDurden
고맙습니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2024. 5. 21. 감상

단 평 : 차가 덜컹거린다

캐릭터의 설정으로 말하자면, 불륜의 남자는 자신의 자동차를 가지지 않는다(혹은 못한다라고 권한을 배제해야한다.)
그의 등장으로 시작하는 본편의 오프닝에서 남자와 택시 기사는 본편의 서사적 메모장을 일순 작성해버리는 편의를
제공한다. 뉴욕에 택시는 많고 그들은 매순간 많은 손님들을 태우고 운행한다는 직업적 대화는 그대로 관계의 정의로
본편 내 삼각관계에 적용된다. 즉, 중요한 것은 누가 본편에서 손님인가이다. 당연하게도 그 반대편에는 정주자로서
운전자가 있다. 이 지점에서 전술한 바, 남자가 부호이기 때문에 자동차조차 소유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상징적이다.

남자는 언제나 손님이기 때문에 어디서든 책임자로서 남근화되지 못한다. 딸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처럼 소개되나,
끝내 양육권을 포기하는 면모는 남자의 객 客으로서의 정체성을 증명한다. 이를 감독의 전작 <로라>의 살인범과
연결하자면, 본편에서 남자는 인종차별을 혐오하는 저명한 변호사로 표면적인 미국 기득권을 대변하지만, 중도에
외지에서 개정된 재판에서 패배하고 그로 인해 육체적 상처를 받는다. 여기에 일격을 더하는 것은 그의 불륜 상대인
데이지 케년인데, 여성의 이 폭행은 꽤나 신뢰를 발생시킨다. 간혹 육체는 정신 너머에서 기호로서 활성화된다.

실제로 데이지 케년이 자신의 애정적 진로를 확정하는 것은 자동차 운행 중 완전히 한바퀴를 굴러 정차하는 사고를
통해서이다. 여성과 그와 결혼한 퇴역 군인 남성이 항구 마을로 들어설 때, 그들의 자동차는 수회 덜컹거림을
표시나게 반복한다. 이는 퇴역 군인이 여성을 만나러 올 때 타고 온 택시의 낡은 외형과도 연결된다. 이같은
매끄럽지 않음이 세상의 지표임을 이해하는 것에서 변호사 남성은 뒤늦게 도착한다. 그는 마지막까지 택시를
타고 돌아간다. 애정에서 누가 승리하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본편의 남근이 영원히 택시에 탑승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