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순수 (The Savage Innocents, 1960)

자막자료실

야생의 순수 (The Savage Innocents, 1960)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026629
    줄거리 : 북극의 에스키모 사냥꾼 이누크(안소니 퀸)는 아내를 갖기로 결심한다. 아시악(요코 타니)을 아내로 맞아 한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던 이누크는 어느 날 총으로 사냥을 하는 한 에스키모를 만나게 되고 그가 백인들로부터 여우 가죽을 주고 총을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항상 활로만 사냥을 하던 그는 총에 매료되어 여우 100마리를 잡은 후 자신의 총을 사러 백인 총포상을 찾아 나선다.   에스키모인의 이야기를 그 ‘이방인’에 공감하는 시선으로 그린 <야생의 순수>는 니콜라스 레이의 지성과 야심이 함께 발휘된 독특한 영화다. 여기서 레이는 <에버글레이즈에 부는 바람>에서 이미 다뤘던 문명의 위협에 직면한 낙원이라는 주제를 다시 전개한다. 그 같은 생태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주제가 펼쳐지는 에스키모의 땅은, 주로 문화적 갈등의 이야기가 감동적이고 시적이면서 깊이 있게 그려지는 픽션의 공간이지만 때로는 에스키모의 생활 방식이 꼼꼼하게 관찰되는 세미 다큐멘터리의 흥미로운 장이 되기도 한다.

제가 좋아하는 안소니 퀸의 영화인데

홍와님이 제작하신 자막으로

블루레이 릴에 맞게 자막 싱크 수정하고

새로 첨가된 자막 해석해서 넣었네요

 

Comments

5 김인섭
감사합니다.
30 가일123
수고 많으셨습니다.
28 바투심슨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28 이야호
고맙습니다
S Sens720
수고하셨습니다. ^^
48 RainBow
수고하셨습니다! ^^
GIVE 3 MP S 푸른강산하
감사합니다.^^*
37 Rookie
감사합니다
29 ll레온
감사합니다
S 궁금맨
고맙습니다.
39 범부
감사합니다.
31 구름뫼
고맙습니다
GIVE 3 MP 42 신동휘
고생 많으셨습니다.
38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34 HAL12
수고하셨습니다~
S 줄리아노
정말 감사해요^^
꼭 보고 싶었어요! 
GIVE 10 MP 17 실룩이
고전영화네요.작업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48 CaMillo
감사합니다.^^*
32 블랙이글
수고하셨습니다.^*^
29 불량아이
수고하셨습니다
16 TylerDurden
고맙습니다.
34 진트
수고하셨습니다
31 靑山
수고하셨습니다
2 후뿌뿌뿌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히 받아갈게요
GIVE 5 MP 7 LIitz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4. 4. 13. 감상

단 평 : 단절이라는 편의

권불십년의 종점에 도착했다. 데뷔작 <그들은 밤에 산다>를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함은 1950년작 <고독한 영혼>
이후 본편에 이르기까지 인물이 분노, 비정 등의 통제되지 않거나 순응하는 불안 표출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혹은 본편을 전작
<쓰디쓴 승리>의 3년 후 응답으로 결산해도 좋을 것이다. 비록 전작과 본편이 인물과 상황, 서사의 맺음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의 공간이 사막-설원이라는 무인지경의 염원을 기반으로 공유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불신을 본다.
전작 <쓰디쓴 승리>에서 인물은 희생양들의 분노에 찬 죽음에도 불구하고 복귀 이후 그저 인형에 자신을 이입시킨 바 있다.

위의 맥락에서 본편은 오즈, 나루세의 전작만큼이나 찬란했던 감독의 50년대 결론으로 수습될 수 있다. 이는 본편을 둘러싼
이념적 논점을 배제하고, 오직 감독 세계 내의 경로에 동행했을 때만 수락하게된다. 관객의 지반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나레이션을 더해 다큐식으로 중계함으로서 본편은 지난 10년간 감독 세계의 인물들이 표출했던 분노의 사유 바깥에서
그것을 무효화시킨다. 중산층의 균열이든, 국가/남근의 획득이든, 아버지/가족의 회복이든간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역사, 혹은 제국주의 하에서만 언급가능한 한계 상황에 불과하다. 본편이 설원의 이국에서 문화적 단절을 행한 사유다.

본편이 수미상관으로 익스트림 롱 숏으로 인물이 도착하거나 출발하는 장면을 이미지화한 선택은 일종의 개념적 전환이다.
극단적인 생존 방식, 결혼 상대 등의 단순한 감정, 자신들 내부의 문화 존속 등에는 사회성으로 통칭될만한 시대적 긴장감의
불안 요인이 부재하다. 심지어, 인물이 동물가죽을 총기를 교환하려 왔을 때조차 폭력은 장난화되며 시대는 습득되지 않는다.
죽음은 종교와 국가에게만 허무하게 배당되며, 미 자본주의의 법과 윤리는 설원의 진공 지대 내부로 침입하지 못한다. 결국
60년대의 시작이 아니라, 50년대의 종점에서 감독은 더 이상 인물의 분노 자체를 신뢰하지 않고 삭제시킨다. 겨우 두 편의
종교-역사 장르물로 한정된 60년대의 미약한 흔적을 감안하지 않아도 좋다면 본편은 어떤 항복 선언으로 해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