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의 도곡리 다리 (The Bridges At Toko-Ri, 1954).1080p.BluRay

자막자료실

원한의 도곡리 다리 (The Bridges At Toko-Ri, 1954).1080p.Blu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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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 변환:교진나라님


2CD 통합- HanSolo님


영어 자막 보고 최대한 싱크를 맞췄는데 영 자막도 싱크는 칼은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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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3 김응봉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여배우가 예쁘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이 영화에 나오는 그레이스 켈리는 정말 예쁘더군요.
4 태사다
리코리쉬 피자에서 참고했다는 바로 그 영화로군요. 감사합니다.
8 제제
감사합니다.
21 holyshit
감사해요
38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18 슈샤드
고생하셨습니다.
29 언제나
수고 많으셨습니다.
10 cinephile001
수고하셨습니다. ^^
S 인향
고맙습니다.
28 이야호
고맙습니다
30 하얀벽돌
수고하셨습니다.
5 cocoya
고맙습니당..
S dreammaker
고밉습니디.
9 공처가
감사합니다.
29 불량아이
감사합니다.
30 가일123
고맙습니다.
8 redjean
감사합니다
7 쮸리
한국전을 주제로 외화라니 신기하네요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3. 3. 16. 감상


단 평 : 예비된 죽음의 사유


의외로 본편은 신경증에 관한 기술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신경증이란 흔한 반전물의

광기 따위를 휘날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선고받고 이를 무의식적으로 체감하는 인물의

마지막 시간에 대한 중계를 뜻한다. 분기점으로 이 맥락이 선명하게 전시되는 단락은

인물이 자신이 전투기로 공중 촬영한 현장 필름을 함내에서 상영하는 회의 시간이다.

노골적으로 식은 땀을 보여주는 서툰 신호를 인지한다면 그 순간부터 영화는 달라진다.


해당 장면 이전까지 흔한 항공물 정도로 분류될 수 있었던 가벼운 서사의 줄기들이

이 장면 이후로 확증편향을 위해 표피를 뒤집고 하나의 조각으로 죽을 자리를 진술한다.

애당초 항공물의 쾌감 따위를 제기할 의지도, 적과의 숨가쁜 전투 장면도 전시할

공식조차 부재했던 본편은 존재론적으로 예정된 죽음 앞에 던져진 인간의 실존에만

관심을 두고자한다. 무엇보다 우선으로 유사 아버지는 이미 두 아들을 잃은 거세된 자다.


그의 과거라는 시각으로 투영된 인물이 다시 아버지의 또다른 아들로서 반복된 운명을

수행할 것임은 오프닝 장면에서의 헬기로 구조되어 허공에 뜬 육체의 전시에서 노출된다.

그 때 인물을 구조한 이에게는 환타지로서의 녹색모자가 있지만, 엔딩에서 그 모자는

바닥에 떨어지고 구조자 역시 먼저 폭사한다. 이미 그 전에 헬기 승무원인 그들을 굳이

두 함선 사이를 잇는 줄의 허공 위 의자로 전송됨으로서 동일한 운명임을 명시한다.


호텔 목욕탕에서도 조용한 가족의 시간은 다른 일본인 가족에 의해 방해받고, 공습지역

촬영을 위한 비행에서 다른 조종사는 어딘가 죽음과 추락의 분위기를 보이면서 위험한

착륙을 한다. 무엇보다 전술한 현장 필름을 인물이 직시하는 지점에서부터 흑백 필름은

무수한 포격 사이에서 살아남은 이의 시선이 내재되어 있음으로 오히려 죽음을 시각화한

영화의 예언자적 지위를 표시한다. 문제는 죽음이 이미 예비되어 있다면 그 사유를 본편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인데, 이에 대해 본편은 시초보다 거부못한 결말에만 집중한다.

'원한의'는 찾을 수 없지만, '죽음의'는 부여할 수 있는 영화는 '잘못된 곳'만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