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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평 : 거세의 참된 시간
전작에 이어 본편은 서사의 정밀과 세심함, 즉 교직의 묘미를 포기한다. 이쯤되면 서사 자체의 통일성에
대해 브레히트적인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망상이 용인될 정도다. 관객을 메타적 위치,
혹은 제작 과정 안에 참여시키지 않고도 능숙한 장르의 조립을 폐기함으로서 자꾸만 욕망을 결핍시키는
방식의 연출이 의도된 것인지는 확연하지 않다. 그럼에도 관객은 보여지는 사건과 들려진 사건의 투망에서
이미지를 과신하게 되지만, 정작 그물의 촘촘함으로 작용하는 것은 관객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들'이다.
바벳 슈로더의 동명의 1995년작과 비견하기보다 본편의 이같은 태만함과 느슨함에 주목함은 이같은 이유다.
즉, 서사 자체의 불구성이 인물의 유아적 남근성과 등식화된다면, 본편에서 가장 기이한 인물인 여성에게서
시공간을 완전히 초월한 일종의 전지적 포용성을 발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말하자면, 이미 인물은
여성으로 인해 거세받는다기보다 이미 예비되어 있는 홈무비의 울타리 안에 기입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시종일관 서사를 휘감는 여성의 나레이션은 전혀 위협되지 않는 모성-여성의 이상향이라는 극단적 왜곡이다.
3인으로 시작한 영화는 이후에도 2회에 걸쳐 3인을 고집하면서 본편을 기독교적 탄생 신화로 추락시키면서도
전작들에서 보였던 버디무비적인 선/악 이분법의 유사 남성-부친을 등장시켜 인물을 경계 하에 갈등시키고
애당초 서두에서 망부의 총격사를 유전받아 다리-남근을 상실한 이후 어둠 속에서 우유를 마시면서 라캉의
단계별 진입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인물이 폭력이 아닌 유사 부친-검사와의 계약을 통해 남근-총을 포기하여
상징계의 가정으로 입장한 이후 스스로 희생양이 됨에도 부활하는 엔딩은 실재계의 주이상스적 대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