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레즈 (Juarez, 1939)

자막자료실

후아레즈 (Juarez, 1939)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784353

베티 데이비스 미번역작 부수기 중 하나인데, 

영화 포스터에는 후아레즈 역의 폴 무니와 베티 데이비스가 나란히 나옵니다만,

실제로는 데이비스는 조연입니다.

진짜 주연은 멕시코 반군 지도자 후아레즈 역 폴 무니와

상대방인 막시밀리안 황제 역의 브라이언 애헌입니다.

에헌은 1940년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는데 포스터에서는 보기도 힘듭니다.

너무한 거 아입니까???? ^^


영화의 원제가 'Phantom Crown'이었는데 폴 무니가 우겨서 Juarez로 바꿨다는 일화도 있고,

무니가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각본을 직접 어마하게 뜯어고쳤다고 합니다.

실제 베니토 후아레즈는 키가 137 센티미터였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황제 휘하에 멕시코인 장군이 다수였던 건,

프랑스 왕정을 카톨릭 교회가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좌파 반란군을 카톨릭 교회가 좋아했을 리 만무하니까요.


저작권과 무관하므로 영상 링크를 올립니다.

제 구글드라이브가 다 차기 전까지 유효합니다.


"위 출처는 커뮤니티 '씨네스트'입니다. http://cineaste.co.kr 이곳에 오시면 다양한 피드백과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아울러 스크립트를 이용한 불펌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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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9 언제나
고맙습니다.
38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21 holyshit
잘볼께요
30 하얀벽돌
자막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29 불량아이
감사합니다.
GIVE 5 MP 33 스피리투스
고맙습니다.

추카추카 84 Lucky Point!

20 엽전
감사합니다.
10 finding
감사합니다.^^*
14 푸른눈
언제나 그렇듯 수고하셨습니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정말 대단한 영화네요
몰랐던 역사도 알게되고
감사합니다
25 umma55
후기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말 좋은 영화 봤습니다. .
영호보고나서 인터넷을 통해 영화가 그려진 그 시대와 인뭏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영화가 또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영화이야기 게시판에 약간의 감상과
수박겉핥기로 찾아본 내용을 적어보았습니다.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co_cine_scene&wr_id=202840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S 컷과송
2022. 1. 28. 감상

단 평 : 격조의 간명


이제 조롱을 넘어선 어떤 단절이 도래했다고 해야 옳겠다. 폴 무니-윌리엄 디터리의 연속선조차 이를
위해 위인 장르의 소박한 포장술을 폐기했다는 점에서 도무지 이 전환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쯤되면
전작들이 계단이었는가를 되새겨야할 필요가 다소 생성될 정도다, 이같은 맥락의 표면적 근거는 단연
여성이 문 밖으로 나가는 순간의 초현실성에 발견된다. 본편이 여전히 전기의 외피를 두르고 있음에도
디제시스 밖으로의 초월적 탈주는 그 순간에 즉각적으로 소격 효과와 더불어 외부의 부재를 지시한다.

이 숏은 <한여름 밤의 꿈>의 별빛 아래 황홀한 밤과는 완전히 상이하다. 왜냐하면, 여성이 나간 암흑은
곧 실재를 폐기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프랑스 제국 - 멕시코 식민주의/ 민주주의 등이 기실 현실의
합치는커녕 재현의 불균질한 투명성조차 성취할 수 없음을 자인하는 용기어린 선택이 있다. 그러므로,
굳이 인물의 링컨되기의 욕망, 즉 남근 아래의 유아성과 다시 중층화되는 우민화의 조롱에 대해 불쾌를
접수할 필요조차 없다. 극 내에 누구도 성숙하지 못할 때 관객은 디제시스 밖의 이탈에 동의해야한다.

혹은 인민 여성이 아들인 소년에게 '보고 기억하라'리고 말하는 순간에의 영화적 도발의 단순성을 뒤집어
인물들이 초상화 아래 다소간의 앙각숏을 부여받았음을 상기함도 아카이빙의 불구성의 맥락에 있겠다.
영화가 텍스트로서 결코 사실에 편향되기보다 그 자체가 불가함을 진실로서 독백하는 방식이 본편에서
완전히 구축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여성 인물이 암흑과 햇빛 아래의 창으로 모순되는 장소를 오고 갈 때
남근성 아래 불안의 유아인 통치자들이 실재하지 않음을 진술하는 데 주저함이 없음을 인정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