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만하탄 (Coogans Bluff/ 일망타진. 1968) - 돈 시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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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만하탄 (Coogans Bluff/ 일망타진. 1968) - 돈 시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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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제공: pazz

 

++

 

sub2smi: Daaak

20160720 WED

 

 

 

Comments

49 RainBow
옛날 포스터 보니 재밌네요. ^^
11 Radioheadism
감사합니다~! :)
3 jcklaw
감사합니다 잘 보겠습니다~
S 컷과송
2024. 1. 13. 감상

단 평 : 스파게티를 먹지 못한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동년에 <옛날 옛적 서부에서>를 발표했다. 그 작품에서 서부는 철로와 기차에 굴복하고 복수는 신화처럼
죽음과 함께 떠나고, 대지의 여신만이 물과 함께 남는다. 그가 다시 20세기의 미국으로 돌아오는 데는 중간에 '미완의 혁명'을
거쳐 무려 16년이 걸렸다. 돈 시겔의 연출적 변곡점이 전작 <킬러>에 확연히 드러났다면, 본편은 여기에 이제 수명을 다한
장르에 수정 이상의 애도라는 인공호흡기를 장착한다. 감독의 계보는 8년 후 존 웨인을 고용한 <마지막 총잡이>로 복사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탈리아 웨스턴에서 방금 하차하여 미국 서부에서 출발하여 낯선 뉴욕에서 방황한 후 되돌아간다.

하지만, 본편은 예의와 현실을 구분할 줄 안다. 가령, 인물이 뉴욕에서 택시, 호텔 등에서 부당요금을 청구받을 때조차
그는 거친 거부보다는 지폐를 지불하면서 문제점을 지점하는데 그치는 데 이는 장르의 인물에 대한 본편의 예의일 것이다.
하지만, 인물이 겨우 1명, (그가 아니더라도 경찰서에는 기이한 피의자, 피해자들이 넘친다.) 공동체의 평화와 거리가 먼
범죄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뉴 시네마의 오토바이를 활용함에도 불구하고 당구장과 마약에 물든 나이트클럽에서 위협과
폭력으로 부상당하는 단락들은 현실을 도입한 바다. 적어도 동년의 세르지오 레오네는 이탈리아에서 이렇게 하지 않았다.

제목의 'Bluff'는 허세를 뜻한다면, 본편에서 인물이 그 허세를 유지하는 것은 겨우 육체의 남근성 뿐이다. 물론, 중산층적
로맨스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이후 응징의 집단 폭행을 당한다는 접합은 이마저도 존재감으로 지속시키지 않는다.
애당초 이분법으로 배치된 아리조나 황야에서의 원주민 남성과의 대결이 환타지이며, 상관에 의해 뉴욕으로 전근갈 때
목욕 중 나체였다는 점은 그를 유아로 지정한다. 도시는 일대일 총격 결투를 통해 평정될 수 없는 장소인 것을 인지하는
과정이야말로 본편의 실체다. 인물의 도착과 복귀가 헬리곱터라는 특이한 비행체를 통해 전시된다는 점은 그가 과연
앞으로 장르 안에서 실재할 수 있을가에 대한 응답과도 같다. 하지만, 곧 70년대이며 이 의문은 마초이즘으로 대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