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Gervaise,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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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Gervaise,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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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Gervaise, 1956)


에밀 졸라 원작, 르네 끌레망 감독


1cd용 자막 씽크 조정했습니다.

자막 제작하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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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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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불량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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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카로단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4. 5. 8. 재감상

단 평 : 본질로서의 비련

자연주의는 과학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드라마로서 전달됨으로서 정서를 함양시켜야하는 모순을 내재한다. 특히, 그것이
문자가 아닌 이미지로 투영될 때 관객의 본능적인 이입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라는 난제는 항시 카메라의 존재를 무화시킨다.
그럼에도, 본편에서 카메라가 자신의 시점으로 집단의 구두 등을 짧게 응시함으로서 주의환기시킬 때 위의 의무를 망각한다.
이는 감독이 전작에서 반복한 바 고전적 해설로서의 기호 편승을 상기시키며 제유법을 통해 군상들의 주체성이 아닌 속성을
지시하는 것과 같다. 가령, 인물이 자신을 사랑하는 남성과 춤을 출 때 그 몸짓은 거의 흔들림으로 고정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두 인물의 연정과 배치되는 두 육체의 움직임은 과학으로서의 현상 그대로를 전달하지 않고 일종의 드라마적 불안을 시사한다.
즉, 인물에게 부여된 염세주의가 이미 정서를 진지화함으로서 사실 이상의 비극적 낭만을 생산하는 것을 회피하지 못한다.
본편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으로서 결혼식 이후 하객과 신혼부부가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화폭을 감상할 때, 거대한 원본을
스케치하는 캔버스를 보는 프레임은 관객이 유추하는 혁명과 자유의 여성을 완전히 포착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는 과학적
임무로서의 자연주의가 필름으로 현상될 때, 통제할 수 없는 틈새가 된다. 인물은 정신적 원형이 되지 못함을 진술함과 같다.

혹은 오프닝을 비롯한 다른 장면에서 촘촘한 수직 수평의 쇠창살을 전시하거나, 그 후경에 인물이 배치됨으로서 은유적으로
작용할 때 역시 자연주의는 성공하지 못한다. 과장된 낭만주의를 폐기하고자 등장한 자연주의의 기치는 하층민 삶의 궤적의
외피를 통해 당대를 조명하려는 의지에도 불구하고, 운명론으로 귀결되어 여성이 반복해서 머리카락을 고정시키는 핀의
다발을 주목함으로서 가볍게 물화된다. 인물을 둘러싼 남성들의 성격화가 결핍되며 모함하는 여성조차도 충분히 서사적으로
직립하지 못하는 것도 과학으로서의 진리에 근접하지 않는다. 결말부 인물의 가게가 남편에 의해 파괴되는 것과도 같이
본편은 자연주의의 사조적 가치를 시네마의 존재론으로 전환시키지 못하고 재차 감상의 전이에만 알콜중독처럼 몰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