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이너로서 모터쇼에 작품을 출품하게 된 윌로씨는 작품인 캠핑카를 행사장인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까지 옮겨야만 한다. 그러나 유럽의 교통 사정은 여의치가 않고 설상가상으로 일이 커져 경찰 신세마저 지고 만다. 1971년작 <트래픽>은 자크 타티의 만년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9년이나 공을 들인 <플레이타임>이 대중적으로 큰 실패를 가지고 왔지만 타티는 문명비판적인 메세지와 탁월한 화면구성 등 자신만의 스타일을 결코 놓지 않은 예술가임을 보여준다. 느린 템포의 윌로씨는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기계예속의 상태를 드러내준다. 윌로씨와의 교통사고 뒤에 사람들의 리듬은 느려지기 시작하고 모터쇼에서 만능 캠핑카는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플레이타임> 이전의 작품들이 물질만능적이거나 부르주아적인 일상적 삶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윌로씨의 좌충우돌이 빚어내는 갈등에 이야기가 맞추어져 있었다면 <플레이타임> 이후의 작품들은 일단 대작에다가 물질만능의 거대한 사회 속에서의 인간들의 행태를 주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코미디의 귀재로 레인코트와 낡은 모자, 그리고 우산이 트레이드마크인
윌로 씨가 이번에는 자신이 설계한 캠핑카를 트럭에 싣고 파리에서 암스테르담까지
가면서 온갖 역경을 극복하며 포복절도할 에피소드에 휩싸인다.
도로에서 연쇄추돌사고는 오히려 급하게 앞으로만 들려가는 운전자들에게 휴식과
한가로운 시간을 제공한다. 기계문명과 조급한 현대인을 풍자하는 타티 영화의 힘은
그 어떤 현대영화보다 위대하다.
영화는 암스테르담까지 가는 여정을 로드무비 식으로 쫓아가며 타티 특유의 거리를
두면서도 초연하지 않는 시선으로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 탄력적으로 반응
하는지를 유쾌하게 관찰한다.
현대사회가 만들어내는 형태와 색채로부터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타티의 능력도
눈여겨볼 만하다. <플레이타임>의 대실패 이후 다소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후속작이지만 윌로 씨의 여유와 유머는 하나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
[감상 포인트]
1971년 작 <트래픽>은 자크 타티 만년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그는 프랑스 코미디영화의 걸출한 대가는 윌로 씨(Monsieur Hulot)라는 독특한 캐릭터로
직접 연기를 하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늘 레인코트를 걸치고 입에는 파이프를 물고 비틀비틀 구부정하게 걷는 윌로 씨라는
캐릭터는 네 편의 영화에 모습을 드러냈을 뿐인데도 영화사에 꽤 묵직한 존재감을
남겨놓는 데 성공했다.
비록 9년이나 공을 들인 <플레이타임>은 대중적으로 크게 실패했지만 타티는 문명
비판적인 메시지와 탁월한 화면구성 등 자신만의 스타일을 결코 놓지 않은 예술가임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트래픽>에서 윌로 씨는 느린 템포의 움직임으로 사람들의 기계에 부속품처럼 예속된
상태를 암시한다. 사실 타티는 <플레이타임> 이후 더 이상 윌로 씨를 스크린에 등장시키고
싶지 않았으나 윌로 씨라는‘스타’가 없으면 제작비를 얻기가 힘들 것 같아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트래픽> 이후 타티는 완결하지 못한 프로젝트 <컨퓨젼>에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윌로 씨의 최후를 그릴 예정이었다고 한다.
[감독]
자크 타티는 프랑스 코미디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막스 브러더스, 채플린, 키턴처럼
그도 배우이자 작가였으며, 대사를 극도로 절제한 그의 시각적 연기는 전 세계인들에게
웃음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타티는 짧은 럭비 선수 생활을 마친 후, 1930년대 초반부터 뮤직홀에서 당대의
스포츠 스타들을 흉내내는 마임을 공연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결국 1940년대 클라우드 오탕라라가 감독한 몇 편의 영화에서 조연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입문했고 단편영화를 감독하기도 했으나 2차대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1949년 그는 새롭고 효율적인 배달 시스템 개발에 미쳐 있는 한 우편배달부의 이야기를
그린 <축제일 (Jour de Fete)>로 마침내 감독의 기회를 잡는다. 이후 그의 영화의 주제는
줄곧 인간과 기계 사이의 사투를 그리고 있으며, 이는 미국화로 대표되는 현대화와
프랑스적인 전통 사이에서 끼어버린 프랑스인들의 고뇌어린 자화상에 대한 풍자이기도 했다.
1953년 발표한 <윌로 씨의 휴가 (Les Vacan-ces de Monsieur Hulot)>에 처음 등장한
윌로 씨라는 캐릭터는 이후 타티의 영화적 분신이 됐다. 이 영화로 그는 첫 번째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를 만큼 국제적 명성을 얻는다. 그리고 첫 타티의 유성영화였던 <나의
아저씨 (Mon Oncle, 1958)>로 오스카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획득했다.
이후 무려 9년 만에 완성된 70mm영화 <플레이타임 (Playtime, 1967)>을 기점으로 타티의
영화는 전보다 더욱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평가들의 찬사와는 달리 관객들은
난해한 화면과 구성을 완전히 외면하고 만다. 이 영화의 실패로 그는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으며 이로 인하여 은퇴시까지 단 두 편의 영화만을 만들 수 있었다.
<트래픽 (Trafic, 1971)>은 타티의 마지막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 성공했고, 마지막
작품 <퍼레이드 (Parade, 1974)>는 TV물로 프랑스 카바레 배우들에 관한 가짜 다큐멘터리이다.
25년 동안 5작품의 영화라면 결코 다산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는 버스터 키튼처럼
전생애를 코미디에 바쳤으며, 관객들을 너무나 앞지름으로써 개인적으로도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일반적인 극영화의 관습을 버린 <플레이타임> 하나만으로도 그는 일생의 업적을
이룬 셈이었고, 광고와 시각적 개그 등을 뒤섞은 프레임과 소음에 대한 실험은 장 뤽 고다르의
<브라콜라주 Bricolage>에 버금가는 탐구정신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