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도망자 (The Desperate hours , 1955) 720p.HDTV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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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도망자 (The Desperate hours , 1955) 720p.HDTV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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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도망자 (The Desperate hours , 1955)


아래 자막이 한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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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The Desperate Hours

제작국/ 미국

제작연도/ 1955년

러닝타임, 컬러/ 112분, 흑백

원작, 시나리오/ Joseph Hayes

감독/ William Wyler


캐스트/ Humphrey Bogart, Fredric March, Arthur Kennedy





 




어제 "필름클래식" 영화 감상 정모에서 본 <필사의 도망자>입니다.



원제대로라면 "광란의 시간"인데, 제가 보기에는 원제대로 나가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지만,



우리나라의 영화 관련 기관 분들이 보시기에 "광란"이라는 말이 그닥 좋게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분들이 영화를 제대로 보셨더라면 "어느 평화로운 중산층 가정과 동네를 광란 상태로 몰아넣은 간악한



범죄자들1에 대해 관객들이 동정심을 품게 만들 수 있는 제목이다!"라는 이유로 "광란의 시간"을 지지했을 듯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1942년) 만든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사랑하는 "유부녀" 여친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았던 카사블랑카의 미국인 술집 사장의 역을 맡았던 것 때문에, 탈옥수 겸 "무전 유죄! 유전 무죄!"를 외칠 법한 범죄자2로 나와서 다들3 놀라셨더랬죠. 하지만 명배우라면 역시 그 어떤 배역이든 소화해낼 수 있어야 하는 법(천사에서 악마까지, 부자에서 거지까지, 상고시대의 순임금에서 은나라의 주임금까지), 아울러 좋은 사람 역만 주로 맡았던 브루스 윌리스 아재도 영화 <비상 계엄>에서 "미국판 29만 원 장군"역을 아주 훌륭히 맡았죠. "이런 법이 어딨소?!"라는 FBI 요원(덴젤 워싱턴 분)의 항의에 "내가 법이다!(I'm a law!)"를 외치던…….4



그래서인지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대략 지강원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뒤엔가 EBS에서 틀어주었을 때, 지도자급 범인 역을 맡은 사람이 유명 배우라는, 더군다나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보게 된 <카사블랑카>의 남자주인공이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죠. 그만큼 "나쁜놈"이라는 인상이 확실하게 박혔으니까요. 아울러 1946년 영화인 <우리 생애 최고의 해>에서 "전쟁터에서 가정으로 돌아온 뒤 도저히 못 볼 꼴들만 잔뜩 보게 되는 부사관"으로 등장했던 프레드릭 마치 또한 이 영화에서 "강자에게 굽실대다가 기회를 엿봐 덤벼드는 찌질한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것 또한 이미 아련한 옛일일까요.



20여 년 뒤인 어제 다시 본 이 영화에서, 범인인 그리핀(험프리 보가트 분)은 단지 더 나은 삶을 위해 친동생과 함께 범죄를 저질렀고, 체포되기 전에 여친에게 훔친 돈을 맡겨놓았으며, 총질과 살인을 즐기는 범죄자까지 동료로 하여 동생과 함께 탈옥한 "사람"으로 보이더군요.5 아울러 그리핀의 동생 또한 "아버지 같은 형"을 믿고 그의 지시에 따라 살았지만, 그 형이라는 사람이 "중산층 사람처럼 살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지는 못했다"는 점과, 자신을 이렇듯 범죄자로 전락시켰다는 점에 실망하고 회의를 느끼고 반항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형을 위하는 마음이 대단한 인물이지요.6 아울러 제 또래에 이미 아버지인 분들이 제 블로그 이웃분들 중에도 여럿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어제 같은 경우 낙타문 님 덕인지 오히려 "가족을 구하기 위해 은행장직에 앉게 해준 머리를 굴려대고 안 쓰던 몸도 쓰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이해 못하는 철부지 아들내미7"의 이야기로 보이더군요. 뭐, 이래서 창작물은 한 사람 혹은 소수의 사람들(비평가 집단)의 의견만 믿고 "아,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새삼 떠올리게 되지요(같은 사람이 세월이 지나 다시 봐도 이럴진데 말이죠).





  1. 그중 한 명은 험프리 보가트...
  2. 2005년에 영화 <홀리데이>로도 만들어졌으며, 그 훨씬 전에 드라마 <수사반장>에서도 다루어진 사건을 저지른 지강원을 말하는 겁니다. 29만 원 장군 집권기 말엽이라고 기억했는데, 1988년 10월, 그러니까 물태우 집권기더군요.
  3. 어제 참석자는 저, 낙타문 님, 써니 님, 벨라 님... 스탠리 님은 직접 제작하신 신작 영화 <동학, 수운 최제우>의 홍보와 배급 문제로 갑자기 부산에 내려가셔서...
  4. 노스밴쿠버의 어느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극장을 나올 때 어느 한국인 할아버지가 아내에게 하던 말이 들리더군요. "이거 원 (장소만 뉴욕이지) 광주 사태 얘기구먼."
    물론 브루스 윌리스 아재가 "여러분은 죄 짓지 마소!" "나한테 덤벼보지도 않고!(물론 <다이하드>의 악당들 꼴 날라나요^^)" "지금 내가 가진 돈은 이 지갑에 든 290달러가 전부요!" 같은 대사는 안 했지만, 이 영화가 개봉하고 3년 뒤 9.11 사태가 일어나면서 미국 전역에서 이 영화의 내용과 비슷한 상황이...미군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 국민(주로 백인 혹은 기독교도)들과 언론인들, 지식인들에 의해서 벌어졌더랬죠.

  5. 물론 이런 점은 "감성"을 내세우는 몇몇 작가들이 "사형제 폐지"를 위한 방안으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이나 독자는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기실 그런 스토리를 전개한 사람들 또한 누군가가 자신에게 "욕"을 했다는, 혹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소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저놈은 사람이 아님!" 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6. 이런 점 때문에 강재규 감독은 <마이웨이>를 만들 게 아니라, 장동건과 원빈을 그리핀 형제로 재설정해서 이 영화의 한국판 리메이크를 만들었어야 하지 않았겠나...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홀리데이>가 크랭크인에 들어갔고, (나중에는 그 영화의 흥행 결과까지 포함하여) 투자처를 구할 수도 없겠다는 결론이 진작 나왔겠지만요.
  7. 10년 뒤 "제임스 딘"이 되었겠다 싶었던 꼬맹이...




 

Comments

S 컷과송
2022. 3. 10. 감상

단  평 :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



침입자들이 들어서는 경로는 매우 독특하다. 프레임은 오직 그들이 탑승한 자동차의 창문틀을 통해

이중인화된 풍경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그들은 침입하기 이전에 실체를 부여받지 못하는 자들이다.

3인조 침입자들 중 유일하게 문 밖에 서 있는 인물(험프리 보가트 역)가 당연하게도 최후까지 내부에

실존하며, 체포와 사살의 과정에서 과도한 조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찌푸림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체 없는 그림자로서 빛에 노출되는 순간 그 실체력을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장르의 이같은 관습은 사회학적인 맥락만큼이나 노후해졌지만, 50년대 중반이라는 자본주의의 동향은

중산층의 위기와 내재적 타개의 동력이라는 가부장제의 권능에 대해 주목할 시기였음은 상기할만하다.

이와 달리, HOUSE와 HOME의 결속력이 유물론적인가는 전적으로 카메라의 임무에 속한다. 하지만,

감독의 40년대와 비견될 정도로 본편에서는 공간의 심도, 2층이라는 위치 등을 두 대의 전화 수신을

제외한다면 그다지 깊고 크게 각인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주목되는 것은 집 내부에서 외부로의 시선이다.



다시 사회적 위치로 복귀하자면, 본편이 국가의 위상을 중산층 가부장의 무게보다 하향화시키면서

개별적 방어력을 우위화한다는 것은 자못 분열적이다. FBI 라는 감정적 중재자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적극과 소극 혹은 진압과 주시 사이의 외부자들의 불일치는 내부의 긴장을 조력하는 정도를 넘어

집 안밖을 모두 교란의 장으로 위치시킨다. 흥미롭게도 인물의 복수와 인물의 연인은 성공하지도,

도착하지도 못한 채 영화는 종료된다. 결국 시선의 집중으로 인해 사건이 종료된다기보다 내부가

그 자체로 축출에 승리한다는 지점은 새삼 거리의 실현을 되새기면서 동시에 그 거리를 부정한다.
S rayphie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