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을 올리고 (Anchors Aweigh, 1945)

자막자료실

닻을 올리고 (Anchors Aweigh,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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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켈리, 프랭크 시나트라 주연!
 

Comments

1 헤보니언
감사합니다.
S MacCyber
예전에는 '닻을 올려라' 뭐 그런 제목으로 '방영' 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네요.
('상영'을 봤다면 지금 이 세상에 있기 힘들겠죠. ㅎ)
헐리웃 황금시절의 뮤지컬들 최고죠.
이런 영화들에 관심을 가지고 자막도 만드시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
11 방콕맨
감사합니다~.
40 Daaak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3. 6. 9. 감상


단 평 : 사실로부터의 유리


흥미로운 것은 인물들이 결국 성취하지 않는 냉혹한 사실로부터 발생한다. 심지어,

그들은 액션영화에서나 보여줄법한 비탈로의 수직 낙하 장면을 삽입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과시용 거짓을 현실로 완성하지 못한다. 지극히 우연에 불과한 카페에서의

만남으로 대체시키는 용기는 이 지점에서 당해 할리우드 뮤지컬 장르의 한 좌표를

허위없이 발설한다. 어떠한 핍진성도 거부한 채로의 행복한 결말, 무논리의 환타지


이 때, 서사의 구조는 그것이 응집력이나 통일성을 위해 조합된 부분으로 성립하지

않고 애당초 파편성을 부여받아 각자의 단락을 독자적으로 구성한다. 특히, 뮤지컬

스타들과 실제 음악인이 등장하고 그들의 공연을 스튜디오화된 중계처럼 시청함이

흥행의 본령일 때, 서사는 형해화된다. 가령, 진 켈리가 애니메이션의 톰에게 춤을

가르쳐 자유롭게 하는 별도의 시퀀스는 성장 우화를 직설하지만, 그것이 본편의

어느 누구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차라리, 이는 전후 미국사회의 환희에 봉사한다.


수미적으로 악단의 연주로 일치하는 본편에서 인물들이 해군이며 훈장을 받는

시초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어떤 전투 장면도 장르의 혼종으로 배치되지 않고

순수혈통을 지속한다. 사회학적으로 그들이 귀가할 때, 거기에는 구조적 명령의

가부장은 보이지 않고 각자에게 배정된 이성애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홍보적이다.

그럼에도 엔딩이 군대 앞에 전시되어 국가적 승인이 필요함은 이념의 주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