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_The.Man.Who.Shot.Liberty.Valance.1962.1080p.BluRay.x264.anoXm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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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_The.Man.Who.Shot.Liberty.Valance.1962.1080p.BluRay.x264.anoXm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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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함
 

Comments

40 Daaak
감사합니다.
5 자미
감사 합니다.잘 사용하겠습니다.
12 실제상황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0. 5. 6. 재감상

단평 : 성찰은 언제나 만가다.


이름들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Liberty, Ransom 밖에 Tom이 있을 때 이는 공평하지 않다.
이는 마치 오프닝의 기차와 엔딩의 기차가 단지 방향성만으로만 모순됨이 아닌 것과 같다.
​오프닝의 기차는 정제된 극의 재질 그대로 내부로 곡선으로 진행한다면, 엔딩의 그것은
 마치 자료화면을 접합한 것과도 같은 다큐적 품성으로 한번 꺾여진 지점을 내포한다.
​본편의 유명한 대사를 빌자면, 극이 사실이 될 때 비로소 영화가 된다라고 말해도 좋겠다.

극과 다큐의 경계 따위나 이분법을 재론하는 등과 관련된 낡은 시선은 접어두어도 좋다.
외피에서 의도적으로 던져진 해석의 쾌감보다는 60년대라는 존 포드의 마지막 시간들,
가령 <서부개척사>에서 존 포드의 22여분간의 압축이 본편에서 승계되었을 때 영화가
 내리는 강렬한 비극의 선택이 차지하는 감정의 밀도에 충복 充腹함이 적정한 자리가 된다.

이 맥락에서 집이 없는 외지인과 집이 있지만 그 내부에서의 생활이 보여지지 않는 정착민
 중에서 스스로 자신의 집을 불태우기 위해 촛불을 내던지는 후자의 행위는 성찰의 만가다.
​그릇 설겆이를 끝까지 고집하는 이와 사육하던 말을 모두 풀어버리는 대비 역시 이와 같다.
이같은 엇갈림이 용인될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하는 역마차는 'OVERLAND'로 명명됨으로서
 그 장소 자체가 이동의 기호임을 지시한다. 그러므로, 거의 유일하게 내부가 허용된 인물인
 여성이 누구를 선택하는가는 로맨스 차원을 넘어선다. 말 馬의 해방은 일종의 안간힘이다.

​톰은 여인의 식당에 언제나 뒷문으로 들어섰고, 그가 뒷문으로 돌아갈 때의 음영은 여인의
 배웅에도 불구하고 남루한 복선을 면치못한다. 그 반대편에 홀로라도 능히 하나의 단락을
 롱테이크로 유지할 수 있으며 유사 죽음에서도 회복되는 언론인이라는 지점 역시 그가
 단순히 존 포드의 문학적 고주망태에 제한되지 않음을 진술하면서 '말'의 힘을 지휘한다.

​누구나 예상하듯 톰은 '리버티'를 저격하지 않았다. 그의 진술 외에 어떤 근거도 보충되지
 않을 때, 혹은 덧붙여지지 않았어도 좋았을 그 플래쉬백이 기어이 프레임을 비집고 올 때
 관객은 '보여지지 않음'의 중함을 각성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던
 존 포드의 흑백영화라는 마지막 선택의 중의성을 감당해야하는 위치에 다다른다. 아마도
 그것이 프랭크 카프라-존 F. 케네디의 맥락이 밸리를 삭제하고 공동체를 보존한 심경이다.
3 feynmania
Thanks a lot for sharing.^^
5 Cinephile
감사합니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18 조니존
감사합니다
2 Akaky
감사합니다
6 교주와신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