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포장마차 (The Last Wagon, 1956) 리차드 위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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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포장마차 (The Last Wagon, 1956) 리차드 위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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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위드마크 · 펠리시아 파 · 토미 레티그     감독 :  델머 데이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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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48 CaMillo
감사합니다.^^*
S 푸른강산하
감사합니다.^^*
16 블랑코
감사합니다.
S dream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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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pu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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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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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靑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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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22 zzang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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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시네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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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라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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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포크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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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bks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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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zzazzerdamn
감사합니다
GIVE 30 MP S 궁금맨
고맙습니다.
4 박동조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4. 2. 14. 감상

단 평 : 모두가 존중하는 불꽃놀이

저격으로 시작한 영화는 법정에서 사실상 종결된다. 관객은 오프닝에서 인물이 조준 사격하여 살인하는 것을 본다.
이 때 인물을 맡은 배우가 주인공임을 출연진 소개 등으로 이미 인지한 상태에서 그의 첫 행위는 이미 사연이 부여되고
이로 인해 이입을 강요당하여 이에 대한 드라마적인 반전을 기대하게된다. 그 해제가 굳이 결말부에 덧붙여진 군사
법정의 격론이다. 흥미롭게도 해당 법정에서 판사의 역할을 담당한 이는 전작 <부러진 화살>의 장성과도 동일하게
한쪽 팔이 결여된 불구성을 드러낸다. 이는 일종의 육체를 통한 국가 이데올로기의 부재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감독의 기존 세계와 동일하게도 타자와의 공존은 성립되지만, 여전히 타자화 혹은 타자되기에서 본편은 머뭇거린다.
인물이 원주민 코만치 부족으로 성장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백인 남성이면서 동시에 원주민의 습속을
사회적으로 학습한 초월적 경계인으로 등장한다. 이는 인물이 아파치 전사들와의 대결에서 차례로 상대를 살해하는
능력을 과시하는 불필요하고 비윤리적인 단락에서 증명된다. 서사에서 타자성이 소비되는 방식이 충분한 윤리적
타당성 없이 배역을 소진하는 방식인데도, 아직 50년대 중반 할리우드 장르극은 이를 철저히 인지하지 못한다.

본편은 인물이 거의 현실적 구도자로서 생존한 청년들을 이끌어 안전한 백인 국가의 영역으로 귀환시키는 과정에서
로맨스 대상으로 혼혈 원주민 여성이 아닌 백인 여성을 선택한다거나, 기병대와 성경 등의 공고한 이념적 기호를
배열하는 방식은 여전히 이념적 시선이 누구를 중심으로 유지되는가를 증언하는 모순 어법에 가깝다. 그럼에도
본편이 아파치족과의 대결에서 포장마차를 폭발시키는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식은 영화적 이미지의 낭만적 어법으로
언급될만하다. 이는 감독이 웨스턴의 어법이자 쾌감인 광활한 가로선의 포용성과 더불어 본편만의 미사어구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