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존 포드 John Ford
각본 : 도로시 요스트
작중 화자에게 너무 몰입해서 과하게 옮긴 대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좌표를 하사 받아 세공했습니다.
나무랄데 없는 무성 영화입니다.
작품에 나오는 말 이름은 가상의 이름이 아니라
다들 한가닥하고 은퇴한 종마이거나, 당시 잘나가던 경주마들이었어요.
닭이 나오지 않아서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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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의 긍지, Kentucky Pride, 존 포드, John Ford
아직 한국어 자막이 없네요!한국어자막 간절히원합니다.부탁드립니다.
전 이 감독님 작품을 많이 접하지 못 해서 이번 기회에 조금씩 접하고 있습니다.
염두해두었다가 여건이 되면 한번 검토해볼게요.
너무 기대는 마시고요. ^^
덕분에 워호스 열심히 찾아봤어요 ^^
단 평 : 화자가 배제되는 순간들
화자가 자신의 시선을 올곧이 가지지 못하는 불일치가 통용될 수 있을 것인가에 본편의 논점이
제기된다. 물론, 여기서 화자의 者는 인간화의 유머와 만용 사이를 오가는 非인칭'이어야'한다.
근자 유럽에서의 당나귀들의 어슬렁거림'들'을 상기하자면, 그 반대편 미국의 말들은 결코
실존적 흔적이나 탈주로서 존재한 바가 드물다. 스필버그의 <워 호스>가 본편에서 확장되었다면
이는 화자와 시선의 일치라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오히려 바로 이 불일치가 소중하다.
후인의 그것처럼 시대의 전장을 관통하기 위해 시선이 부여되지 않았다면, 본편에서 화자의
역할이 말 馬에게 배정될 때 요점은 그(성 性 비인칭)가 어떤 면모를 대변하는가에 있을 것이다.
이는 결국 그가 존 포드의 전통과 영광을 무성영화적 해피엔딩으로 등식화하기 위해 신화적
시간을 경유하고 혈통의 승리를 목도해야한다는 의무로 집결된다. 결말부에서 말은 경주장이
아닌 시선의 자리에 놓인다는 것은 본편에서 거의 유일한 시선=화자의 일치를 위한 노력이다.
화자의 한계는 혹은 시선의 장벽은 그가 듣거나 보지 못한 상황을 전달할 수 없음에 있다.
가령, 관리사 역의 남성이 웨스턴적 위치에 배정되기 위해 교통 경찰이 되어 도심의 석유-말을
정리하는 상황은 물론이고, 그가 편집의 전략으로 승진하는 단락의 삽입의 독립성은 누구도
완전하게 보거나 말해질 수 없음을 증명한다. 이것이 서사의 예의인지는 모호하지만, 프레임은
마이브리지의 말 움직임 외에도 관리사들의 자리바꿈의 리듬감을 통해 말이 아닌 인간 행위를
통해 조화를 추구한다. 엔딩에서 단발 사진기는 넘어지고 연속 카메라가 굳건한 것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