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포드 초기작 중 하나입니다.
역시 이미 거장이네요.
긴장감이 훌륭하게 유지되고 인간미가 철철 넘칩니다.
실화라는 게 또한 흥미롭네요.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런 영화 자꾸 번역하면 어깨에 무리가 오기 십상입니다.
가속도가 붙거든요.^^
주연인 워너 백스터는 '42번가'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열연입니다.
"위 출처는 커뮤니티 '씨네스트'입니다. http://cineaste.co.kr 이곳에 오시면 다양한 피드백과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아울러 스크립트를 이용한 불펌을 금합니다.
그리고 타 사이트 업로더 여러분께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작권 문제로 삭제되더라도 가급적이면 퍼가시는 것보다는 링크로 연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https://drive.google.com/file/d/1lnuCOZarifJX43shwDAASevslVj4CrhR/view?usp=sharing
너무 고용량에 놀라신 분을 위해서 화질가성비 좋은 저용량 하나 링크합니다.
자막 싱크는 동일합니다.
토마스모어 님 영상으로 감상합니다. 영상 기차 고맙습니다.
토마스모어 님 영상 기차 영상으로 감상할게요.
친절한 설명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단 평 : 배반은 영원히 회귀한다
무엇보다 먼저 말해둘 것은 위 장면에 등장하는 인원수다. 후면의 남성을 필두로 그의 가족들은
모두 13명이다. 이는 전작 <길을 잃은 정찰대>에서의 병사들의 숫자와 동일하다. 이를 곧바로
종교적 함의로 전환함은 간편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바는 전작과는 달리 본편의 위 장면에서
남성을 제외한 12명은 엔딩까지 등장하지 않음에 있다. 즉, 그들은 그저 숫자를 위해 포함된다.
게다가, 위 장면이 중심 인물의 귀가 후 엔딩이라는 점은 위 종교성을 슬쩍 본질로 회귀시킨다.
비로소 혹은 진실로 흑인 노예 남성이야말로 참된 존재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그가 주체인가?
질문은 세계에 대한 혹은 미국 역사에 대한 존 포드의 태도로 귀결된다. 포드적 인물이 단순히
두 국면의 이질적인 대응 속에서 모순적으로 절합됨을 잠시 기각시킬 정도로 엔딩의 가족수는
기이한 신뢰성을 수용시키기 위해 개입된 것이다. 종교라는 일관됨에 대한 환상을 노예제도의
공포와 연결시킴으로서 인물과 세계의 내재된 분열성을 마취시키려는 참된 의도가 여기에 있다.
재론의 여지 없이, 역사적 사실과 본편의 일치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존 포드가 해당
인물에서 배치된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배반의 음악과 더불어 복선한 이후 종종 연극적 장치와
불구적 남근성을 혼합하여 전시하는 순간들의 매혹이 있을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 안에서
배우가 역사를 암살하는 사건을 좀 더 드라마화하지 않은 자제력에서 찾아야될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무대에서 탈출한 살인자가 실재의 초인성을 추출했다는 반역적 기적 역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