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피플의 저주 (The Curse of the Cat People,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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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피플의 저주 (The Curse of the Cat People, 1944)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884409

<캣 피플>의 후속작이지만 캣 피플은 안 나옵니다. 

물론 전작의 주요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긴 합니다만.

호러물이라기 보다는 어린 소녀의 환타지가 내용입니다.

소녀 역을 한 아역배우가 압권이네요.


그냥(?) <캣 피플>의 인기를 업고 만든 영화 같긴 하지만

깔끔한 소품입니다.



"위 출처는 커뮤니티 '씨네스트'입니다. http://cineaste.co.kr 이곳에 오시면 다양한 피드백과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아울러 스크립트를 이용한 불펌을 금합니다.

그리고 타 사이트 업로더 여러분께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작권 문제로 삭제되더라도 가급적이면 퍼가시는 것보다는 링크로 연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Comments

1 킴리도
감사합니다.
16 진주
감사합니다.^^
6 덩신불
감사합니다^^
GIVE 5 MP 10 cinephile001
수고하셨습니다. ^^
3 DocKing
감사합니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22 bkslump
감사합니다
35 Евгения
고맙습니다.
23 zzang76
수고하셨어요
19 큐담
수고하셨습니다
23 다솜땅
감사합니다. ㅎ
29 언제나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한 성탄절 보내세요.
38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29 불량아이
고맙습니다.
10 finding
감사합니다.^^*
28 이야호
고맙습니다
GIVE 100 MP M 再會
엄마님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올 한해도 고생많으셨습니다. 꾸벅~~~~!!
S umma55
재회님이 고생 많지요. 감사합니다.
S MacCyber
'캣피플' 하면 나스타샤 킨스키가 연상되네요. ㅎ
올해도 다작하셨는데 수고 많으셨고 행복한 연말연시 되세요~ 
이 영화는 미국의 유명한 작가 제임스 에이지가 칭찬을 해서 관심만 두고 있었던 작품입니다. 영화 감독 로버트 와이즈의 말로는 자신에게는 오슨 웰즈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 영화 제작자인 발 류튼이었다고 하네요. 발 류튼이 당시 젊은 감독들이었던 자크 투르뇌르, 마크 롭슨, 로버트 와이즈 등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서 감독들의 스승으로 인정받았던 것 같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14 푸른눈
수고하셨습니다
13 zzazzerdamn
고맙습니다
40 Daaak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3. 2. 18. 감상


단 평 : 대상도 너를 바라본다


수습 인원으로 투입된 사유로, 감독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하기에는 주저되는 본편이
영화를 진술하는 것은 환영할만하다. 자크 투르뇌의 <캣피플>과 서사적으로 단절되었다는
외형적 인상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디서 왜 죽었으며 살아남는가에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가'는 인칭라기보다 영화의 본질적 요소가 무엇인가에 대한 두 편의
진정한 응답이라 할 것이다. 이미지와 서사가 복합적인 환타지를 생성할 때, 관객은
과연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좀 더 기대어 진정한 죽음과 성장에 동화되는가가 본령이다.

물론, 이미지와 서사는 구분되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편에서 전직 배우인
노인 여성은 빛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 등장한다. 이후 그녀가 '슬리피 할로우' 이야기를
구술할 때 중요한 것은 공포를 각인시키는 서사적 분위기다. 하지만, 이는 직간접적으로
이미지로서 추동되지 않거니와, 결국 소녀가 보게되는 것은 지나가는 차량의 바퀴다.
그럼에도 본편의 두 개의 축 중에서, 호러 하우스의 서사가 먼저 등장하여 괴담을
선사한 이후 이미지적 실체로서 전작의 캣피플 유령이 보이는 것은 순서 이상의 것이다.

더하자면, 1층의 자신의 방 밖 혹은 2층으로 가는 계단조차 이동하지 못하는 노인의
죽음은 이미지가 분노의 실체와 합일됨으로서 친구로 호명됨은 일종의 승리다.
그러므로, 엔딩에서 아버지가 소녀를 안고 자신에게도 유령이 보인다고 말하면서도
결코 고개를 돌려 그것을 확인하지 않는 단호한 숏은 굳이 그것이 시각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면, 내가 대상을 보고 그 대상 역시 나를 보고있다는
자체 교환적 상상력이 하나의 상징으로 존속됨이 영화라는 개념적 실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