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과 동의(Advise and Consent, 1962)

자막자료실

조언과 동의(Advise and Consent, 1962)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540149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를 두고 상원이 청문회를 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보통 한글제목이 '조언과 동의'인데, 정치용어로는 '권고와 동의'라고 합니다

(구글 제목은 '워싱턴 정가'인데, 매우 맘에 안 듭니다).

  • 명사 말로 거들거나 깨우쳐 주어서 도움. 또는  .

  •  

권고 3  [ː] 어떤 일을 하도록 권함또는 그런 .

그러니, 정확한 제목은 '권고와 동의'가 맞겠습니다.
대통령에게 깨우쳐준다기 보다는 권하는 과정이니까요.
이 후보는 별롭니다, 등등....

제가 좋아하는 상남자들이 떼로 나오는 영화인데다가,
한 때 'political junkie' 수준이었던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즐겁게 작업했습니다만,
역시 정치용어와 비유가 난무하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영화 오프닝 크레딧에 뻔뻔하게도 헨리 폰다가 주연으로 제일 먼저 나옵니다만,
실제로는 조연 정도입니다. 진짜 주연은 찰스 로튼과 월터 피전이지요.
이 둘은 같은 당 소속인데도 정치적 견해가 판이하게 다른 걸로 나옵니다(이 부분이 좀 깹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겠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미국 상원의원들은 당령이 아니라 개인의 소신대로 투표를 하는군요.
표를 확보하는 건 원내대표의 일인 줄 알았는데
영화에서는 당 대표가 주로 이리뛰고 저리뛰어 다닙니다,
불쌍한 월터 피전....^^

IMDB 뒷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워서 옮겨봅니다.
바람둥이 상원의원 '레이프'의 모델은 존 F 케네디이고, 대통령의 모델은 프랭클린 루즈벨트입니다.
맨날 졸기만 하는 노인 의원 역은 실제 5선이었던 의원이 했고요,
심지어 닉슨도 부통령 역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합니다.^^
대통령 역을 한 프렌촛 톤과 시브 쿨리 역을 한 찰스 로튼의 유작이기도 하며,
진 티어니가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등장한 복귀작이기도 합니다.

암튼, 뭐, 모든 영화가 이 영화만큼 완성도가 높다면 세상은 더 살맛날 겁니다.


참고로,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되는 글을 일부 퍼왔습니다.
=============================================================================
미국의 경우, 후보 내정자 발표 전 백악관의 인사국과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윤리위원회가 
각 후보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신원 조회와 세무 기록, 도덕성 조사까지 철저히 진행한다.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와 상원 위원장 등을 면담해 각 후보자에 대한 평가와 반응을 검토한 뒤 후보자를 발표한다. 
이후 상원에 인준 요청을 하면 해당 위원회는 정부 당국의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인사청문회를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상원의 권한은 막강하다. 상원의 해당 위원회는 필요한 자료를 거의 무제한 요구할 수 있고, 
심지어 인사청문회 절차와 표결 시기를 정할 권한도 있다. 
상원 규칙에 따르면, 대통령이 내정자를 지명한 이후 상원이 ‘30일 이상의 휴회’를 갖기 전에 인준이 결정되지 못하면 
그 인사는 자동으로 기각된다. 
이처럼 상원의 권고 및 동의(advise and consent) 권한은 대통령제의 핵심인 견제와 균형의 중요한 축이다. 
사실상 의회가 ‘거부권’을 갖는 구조인 셈이다. 




"위 출처는 커뮤니티 '씨네스트'입니다. http:/


/cineaste.co.kr 이곳에 오시면 다양한 피드백과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아울러 스크립트를 이용한 불펌을 금합니다.

그리고 타 사이트 업로더 여러분께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작권 문제로 삭제되더라도 가급적이면 퍼가시는 것보다는 링크로 연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Comments

10 은근슬쩍
고맙습니다.
S 컷과송
2024. 6. 18. 감상

단 평 : 보여지지 않는 죽음들

본편의 각본을 달톤 트럼보가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은 중요한 시사점일 수 있다. 전작 <영광의 탈출>에 이어 본편이
건국 신화의 모순적 이면을 기술하는 데 집중함으로서 다시 남근성의 붕괴로 선명하게 복귀했음을 인지하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본편이 매카시즘을 재현하면서도 동시에 장관 후보자의 역량 전시를 생략하고, 추천자로서 대통령의
죽음을 삽입시키면서 루즈벨트를 상기시키는 목적의식은 60년대 미국에 대한 냉소일 것이다. 관객은 여기에 닉슨을
중첩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현실 정치와는 별개로 감독이 자신의 50년대를 변화시키지 않는 것은 공포다.

냉전의 지속이 내부를 검열시키며, 이를 40년 이상 상원을 지켜온 의원의 청렴함으로 결합할 때 미국의 보수성은
특유의 농담들로 유회되면서 보존되지만, 여기에는 냉전 완화 등의 협력성이 채택되지 못함으로서 퇴행은 가동된다.
본편에서 거의 유일하게 아내, 자녀로서의 가족이 제시된 젊은 상원 의원의 죽음은 전술된 문장이 그저 단순하거나
선명한 이분법으로 재단될 수 없음을 성 소수자의 억압적 지위로 연쇄시킨다. 본편에서 장관 추천된 인물도 상황을
엿듣는 아들의 존재가 있음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완전한 승리, 패배를 수행한 바가 없다는 결론 하에 미국의
현재는 엔딩의 퇴장한 이후 공허한 의회 내부로 제시된다. 승계받은 부통령의 시대는 과연 어떠할 것인가에 멈춘다.

하지만, 이 모든 진행상황은 전작과도 같이 건조하지 못한 채 노골적으로 정감어린 드라마화를 구축함으로서
국가로서의 남근 거세 징후를 나열하는 어법은 현실적일 수는 있지만, 거리두기의 관조로서 나태와 포기를
양산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카메라는 두 정치인의 죽음을 정확히 포착하는 것을 거부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직시할 수 있음과 전해들음의 간극에서 본편은 영화가 어디에 있을 수 있는가를 자문한다. 자유주의로서
미래를 전망할 것인가, 파시즘의 퇴행과 직간접적으로 결합할 것인가? 여기에는 어떤 지름길도 불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