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독일어 자막을 기초로 만들어 올렸다가 요즘 다시 검색해 보니 블루레이 고화질이 출현하여
그동안 두분께서 자막 씽크를 조정하여 작업을 해 놓으셨더군요. 감사드리며... 저도 그 자막을 받아서
그냥 보려고 하였으나 검색해 보니 마침 영문자막도 나와 있어서 다시 작업을 해서 올립니다.
세밀한 부분들은 손 볼 데가 많아서 거의 새 작업이 되었고 시간도 좀 걸렸네요.
옛날 서부영화 하면 게리쿠퍼 와 죤웨인인데 ... 추억의 영화입니다. 소장가치 만점이죠.
"위 출처는 커뮤니티 '씨네스트'입니다. https://cineaste.co.kr 이곳에 오시면 다양한 피드백과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아울러 스크립트를 이용한 불펌을 금합니다.
그리고 타 사이트 업로더 여러분께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작권 문제로 삭제되더라도 가급적이면 퍼가시는 것보다는 링크로 연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단 평 : 매달리지 않는 방법
게리 쿠퍼의 말년작은 철저히 웨스턴이든 아니든 당대에서는 자기반영성 하에서 응시된다. <황야의 탈출>과
거의 유사한 본편의 얼개는 종교성을 육체적으로 과시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 양자 결투 등의 장르의 고전적
쾌감은 지속되지 않는다. 윤리의 주관자로서 일방적인 징벌만을 주도할 뿐, 그것이 공동체의 평화라는 목적과는
상관되지 않는다. 이 지점은 감독의 50년대 전반을 상기할 때 완전히 배반된다. 과거 감독의 세계에는 종교의
외피 하에서 공동체는 어디에도 출몰하며 항시 준비된 자세로 인물을 포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별계다.
하지만, <결단의 3시 10분>이 마치 게리 쿠퍼의 <하이눈>이 그러했던 것처럼 공동체의 윤리적 속성과
임무가 부재한 이후로 본편 역시 이를 지속한다. 이 때 주요한 것은 인물이 어디에 위치하는가인데,
카메라는 그의 주거지를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공간에 배정하고 인물과 여성이 반복적으로 마을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롱 숏을 프레임화한다. 이 이분법은 철저히 두 부류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전
서부극 장르에서와 달리 마을이 더 이상 영웅 희생으로 치유할만한 회복의 내재성을 철저히 부인한다.
부산한 사이비 종교까지 소환하지만, 결국 골드 러쉬의 자본주의는 인민의 광기로 어떠한 법적/제도적
절차없이 곧바로 교수형의 나무로 직행한다. 이를 해제시키는 것 역시 황금이라는 점은 절망적이다.
엔딩 프레임이 교수木 아래에서 인물, 여성, 청년이라는 3인만 허용할 때 이는 웨스턴의 황혼을
예감하게한다. 인물의 여성이 외국인이라는 점과 그녀를 성욕의 대상으로만 소비하는 남성 군중과
혐오로 일관하는 여성 집단 등은 본편의 제목 교수목과 더불어 서부극으로 보는 미국 묵시록을 지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