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즈 (Moonrise, 1948) 문라이징

자막자료실

문라이즈 (Moonrise, 1948) 문라이징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1831798

이것은...심리 느와르입니다. 

주인공의 심경 변화를 관찰하는 게 영화보기의 핵심입니다.

제임스 스튜어트니, 버트 랭캐스터 같은 배우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유명하지 않은 배우를 기용한 게 주효했다는 느낌입니다.

열연을 했는데도 스타가 못 된 배우지만요.


끈적끈적하고 야만적(?)인 남부의 분위기 연출이 빼어납니다.

원래 기획은 B급 필름이지만, 완성도는 A 중 A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제목은 '문라이징'이지만, 원제는 '문라이즈'입니다.

moonrising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래도 검색을 위해 병기했습니다.


좋은 작품을 요청하시는 Lowchain232님의 요청입니다.


영상은 일주일간 공유합니다.



"위 출처는 커뮤니티 '씨네스트'입니다. http://cineaste.co.kr 이곳에 오시면 다양한 피드백과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아울러 스크립트를 이용한 불펌을 금합니다.

그리고 타 사이트 업로더 여러분께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작권 문제로 삭제되더라도 가급적이면 퍼가시는 것보다는 링크로 연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Comments

S 컷과송
2021. 10. 21. 감상

단 평 : 얼굴이 보일 때까지

본편 서사의 통일성과는 달리 데뷔 이후 거의 매년 작품을 샌상했던 감독은 본편 이후 10년간
장편을 연출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본편과는 달리 프랭크 보제이즈는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는 본편이 은폐하려고 하는 죄의식의 실체, 즉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인물이 주체로 구성되는데
부정적으로라도 충만했던 지반이 무엇인지 추정해야하는 관객의 거북한 입장과도 다르지 않다.
동일시되면서 동시에 동일시되어서는 안되는 인물이 무직자로서 방랑할 때 응원은 결코 쉽지 않다.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이 필요충분적으로 자본주의에의 협곡을 노출시킨다고는 할 수 없다.
설사 인물이 지폐를 사용하는 광경을 가능한 회피하려는 의지가 섬세하거나 혹은 비겁하다고해도
표현주의 심리극에의 천착을 전후 남근회복에의 정치극으로 환전하는 것은 추천 경로가 돨 수 없다.
오히려 재현이라는 리얼리즘적 위도에서 오프닝의 당연한 지시라고 해야 할 현상 바깥으로의 현상,
혹은 번짐으로의 현상을 포착할 수 있는 카메라의 권능에 순간 마취됨이 찬양될 수는 있을 것이다.

더하면, 사실상의 문어체에 가까운 인물들의 대화 혹은 고의적 단절체로 작용하는 어법의 괴기함을
현명한 소격으로서의 재현으로 언급하게된다. 이는 드러난 머리로서의 카메라가 아닌 드러나야할
얼굴로서의 실체에 대한 유령적인 존재감으로 연계된다. 불필요한 장르적 쾌감으로서의 수사극은
폐가와 습지의 스튜디오의 폐쇄성 앞에서 소멸됨이 타당하다면, 반복된 죽음에의 시도와 노골적인
편집의 연계성이 청력을 거의 상실한 노인의 정체성 외침 '양키'와 결합될 때 정합성은 도래한다.
40 Daaak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