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의 지평선은 땅과 하늘은 정확히 인간과 과일(꽃)으로 제시된다.
초반부 죽어가는 노인이 과일 열매 위에 누워있다면
결말부 죽은 청년의 운구 행렬은 해바라기 꽃을 스쳐간다.
전자가 대지의 나눔이라면, 후자는 대지의 축성이 된다.
본편은 인물들을 단순히 선전의 계급 투쟁의 역사에 고립시키기보다
농민의 삶이 토지와 분리불가능함을 운명론으로 강조한다.
이를 가혹하게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축약함은 이론적일 수 있다.
당대의 농기계 도입에 대한 농민들의 환호가 '영화의 얼굴들'로
제시될 때 이는 혁명 이후 1920년대 러시아 형식주의의 인장이자 자신과 자존으로 읽힌다.
당대 러시아 영화가 인민의 얼굴에서 혹은 군중 집회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고자 했다면 본편은 여기에 인민이 곧 누구였는가에 대한
해답을 대지 안에서 과일과 꽃으로 기호화했다.
더불어 본편은 대지의 순환성을 노인-아기-여성-출산-맨살의 연쇄를 통해 직설하는데
여기에는 일종의 운명론의 서정이 겸비된다.
그 반대편에 지주 계급은 거의 필름 위에 노출되지 않고
울분에 차거나 활기찬 인민들만이 영화를 성립시킨다.
단평 : 나는 과일과 함께 걸었다.
오프닝의 지평선은 땅과 하늘은 정확히 인간과 과일(꽃)으로 제시된다.
초반부 죽어가는 노인이 과일 열매 위에 누워있다면
결말부 죽은 청년의 운구 행렬은 해바라기 꽃을 스쳐간다.
전자가 대지의 나눔이라면, 후자는 대지의 축성이 된다.
본편은 인물들을 단순히 선전의 계급 투쟁의 역사에 고립시키기보다
농민의 삶이 토지와 분리불가능함을 운명론으로 강조한다.
이를 가혹하게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축약함은 이론적일 수 있다.
당대의 농기계 도입에 대한 농민들의 환호가 '영화의 얼굴들'로
제시될 때 이는 혁명 이후 1920년대 러시아 형식주의의 인장이자 자신과 자존으로 읽힌다.
당대 러시아 영화가 인민의 얼굴에서 혹은 군중 집회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고자 했다면 본편은 여기에 인민이 곧 누구였는가에 대한
해답을 대지 안에서 과일과 꽃으로 기호화했다.
더불어 본편은 대지의 순환성을 노인-아기-여성-출산-맨살의 연쇄를 통해 직설하는데
여기에는 일종의 운명론의 서정이 겸비된다.
그 반대편에 지주 계급은 거의 필름 위에 노출되지 않고
울분에 차거나 활기찬 인민들만이 영화를 성립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