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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항해자여.Now, Voyager(1942) 어빙 레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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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뮤니티인기글 +23 3일전 [유머] 한국 국적을 포기한 곽튜브 +20 3일전 자막자료실에 1962년까지 발표된 작품들 경우 영상 공유 링크가 허용될 예정입니다. +16 2일전 의사의 뒷모습 +11 2일전 와 지진.... +6 2일전 오늘도 재밌는 거 어보와떠요 +13 1일전 착시에 속지 않을 수 있으신가요? Previous Next
추카추카 29 Lucky Point!
추카추카 21 Lucky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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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평 : 비가시적인 기적
단 하나의 위치선정만이 있다. 불필요하게 노출된 신체 클로즈업을 기거이 폐기할 수 있다면, 관객은
카메라가 인물의 모친의 등 뒤에서 기둥에 놓인 그녀의 손가락이 떨리는 심리적 동작보다도 더욱
주목할 것은 음성만 들리며 모습은 벽 뒤로 은폐된 인물에 본편에서 유일하게 주목하게 된다. 이것을
과감하게 카메라의 직무 유기라고 한다고 해도 그다지 변론할 근거를 찾지 못하겠다. 혹은 다르게
말해 그같은 변신 환타지의 분기점이 보여질 수 있는가에 대해 본편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인물이 모성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치유 공간을 경유하여 유람선에서 탈태의 형상을 전시하는 경로에
본편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그저 제목의 근원인 문학에 기대어버린다. 이것이 서사 구축의
기대감을 배반하는 첫번째 비가시성이다. 두번째 비가시성은 위 장면을 비롯하여 모친과의 대결이
한순간 죽음으로 처리되기까지 특정한 서사적 단면의 부재로부터 발견된다. 유산을 상속받으며
간단히 모성으로서의 자리까지 스스로를 확장시키는 인물은 이같은 보여지지 못함으로 불신된다.
문제는 단순히 비가시성인가 아닌가라는 직무의 문제나 보여질 수 없음을 단언하는 태도로 그치지
않는다. 관객은 드라마가 마땅히 구축해야할 착색의 순간을 부재화당함으로서 그저 그 결과물에만
탐닉하여 구경꾼으로서의 자신의 무력한 위치에 직면하게된다. 억압 대 주체라는 저급한 이분법이
유람선이라는 구원에 대비되는 것 이외에 주체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응답하지 않을 때
영화는 자신이 그저 보여지는 매체에 불과함을 자괴한다. 보고싶은 것은 벽 뒤의 성난 얼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