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도우를 찾아서 (Meet John Doe 1941) Meet.John.Doe.1941.1080p.HDTV.x264-REGRET

자막자료실

존 도우를 찾아서 (Meet John Doe 1941) Meet.John.Doe.1941.1080p.HDTV.x264-REG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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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3CD 자막 합친후릴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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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33 스피리투스
고맙습니다.
S 궁금맨
고맙습니다.
GIVE 3 MP S 푸른강산하
감사합니다.^^*
32 블랙이글
수고하셨습니다.^*^
GIVE 5 MP 20 큰바구
감사합니다^^*
48 CaMillo
감사합니다^^*
15 쭈우니
수고하셨어요
9 패도무영
수고하셨습니다.^*^
28 이야호
고맙습니다
S dreammaker
감사합니다.
GIVE 3 MP 42 신동휘
고생하셨습니다.

추카추카 22 Lucky Point!

37 Rookie
감사합니다
39 범부
감사합니다
38 보라™
수고하셨습니다^^
30 가일123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0. 12. 19. 재감상

단 평 : 기표는 추락하지 않는다.


속류가 넘쳐난다. 이는 단정된 부정적인 시각이며, 위계 질서를 규정하는 지적 권력의
행위다. 이를 횡포라 단언하고 싶지는 않으며 그것은 전문가적 윤리라 칭해도 좋겠다.
본편은 프로이드적 전치 개념을 너무나도 길게 대사로 전달하면서 스스로 저급임을
숨기지 않는다. 더욱이 전작 <옌 장군의 쓰디쓴 차>에서 유일하게 주목할만한 장면인
꿈 시퀀스를 본편에서는 그저 표현주의의 음영 아래로 인물의 구술에만 의지할 뿐이다.

본편의 다른 시퀀스들, 가령 군중 동원 장면들에서의 무수히 많은 얼굴뿐인 단역을
상기하자면 충분히 구현 가능하며 서사의 결을 확장시키는 꿈 단락이 촬영되지 않은
사유는 추정되지 않는다. 다시 변방-남성-노동은 도심-여성-지식을 정화시키지만,
본편은 전작에서처럼 여성의 들뜬 욕망이 아닌 남성의 우회와 자해로만 정지시킨다.
남성에게 부여된 이같은 직설은 미학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위 도식을 무력하게한다.

본편을 위 도식 하에 자본-의회 권력를 잇는 3부작 중 언론으로 지정함은 당대의
<시민 케인>과 후대 <네트워크>를 비롯한 언론 매체물의 장르성으로 한정하게한다.
혹은 안토니오니의 <욕망>을 상기하며 기표로 지정되어 고정된 기의가 조작되거나
스스로 기의가 되는 순간의 낡은 감상성을 기꺼이 속류로 받아들이고 호텔방 내의
야구 놀이를 본편 전체의 허위성과 연결시킨다면 이를 굳이 거부하고 싶지 않다.
프랭크 카프라는 본편이 속류로서 존 도우의 이름으로 거론되기를 염원하지 않았을까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S BJCool
감사합니다
23 다솜땅
감사합니다..*^^*.
9 공처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