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이전에 먼저 본편이 반복해서 사용한 어법에 대해 말해야겠다. 파스텔풍 화폭이 필름으로 현상되는듯한 효과는
많은 영화들에서 사용되어 진 바 있다. 본편도 그같은 프레임 구성이 의도하는 바의 효과와 의미를 그대로 차용한다.
말하자면, 영화는 이미지이며, 회화가 선재했음을 성찰함으로서 할리우드 영화가 가져야할 기본 자세를 점검한다.
구술과 문서를 통해 역사와 신화가 대중에게 통용되는 것은 회화의 평면적 정지를 경유하여 스크린의 운동과 소리를
통해 비로소 이미지로 안착된다. 이 때 실재와의 합치가 불가하다면, 영화는 스펙타클과 연극의 신화를 선택한다.
가령, 역사 속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논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당대의 배우를 통해 구현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제 지배자이자 외교 정치가로서 실리를 추구하는 면모는 상업적 로맨스 전략 하에 소거되지만, 관객은
그 이면을 고려하지 않는 환타지에의 욕망을 거대한 영화 무대의 디자인을 통해 만족시킨다. 본편을 감독의 기존
세계와 연관시킬 때, 그간 영화 속 인물에게 통용된 바 있는 주체의 욕망 혹은 그 불구성이 본편에서 거대한
자본의 전시를 통해 충족되는지에 대한 질문이자 응답이 된다. 관객은 결말에서 뱀의 요동을 확인해야만한다.
본편의 역사적 서사가 끊임없는 배신과 분열로 점철되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혹은 유사 오이디푸스의
경로에서 타자화되었던 어머니/여성의 위치를 역사에 기대어 전면화했음에도 종장에서 파국화하는 것 또한
동일한 맥락에 있다. 하지만, 이를 환영해야할지는 주저된다. 전작에서 현재와 과거로부터 변화 회복된 인물은
본편에 이르러 사랑의 아름다운 죽음으로 치장됨으로서 퇴행한다. 할리우드 영화가 가지는 어떤 임무에 따라
역사의 이미지를 구성한다는 것은 과거가 결코 완전히 재현될 수 없음을 진술하는 모순적 행위가 된다.
두고 두고 잘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단 평 : 영화의 임무
본론 이전에 먼저 본편이 반복해서 사용한 어법에 대해 말해야겠다. 파스텔풍 화폭이 필름으로 현상되는듯한 효과는
많은 영화들에서 사용되어 진 바 있다. 본편도 그같은 프레임 구성이 의도하는 바의 효과와 의미를 그대로 차용한다.
말하자면, 영화는 이미지이며, 회화가 선재했음을 성찰함으로서 할리우드 영화가 가져야할 기본 자세를 점검한다.
구술과 문서를 통해 역사와 신화가 대중에게 통용되는 것은 회화의 평면적 정지를 경유하여 스크린의 운동과 소리를
통해 비로소 이미지로 안착된다. 이 때 실재와의 합치가 불가하다면, 영화는 스펙타클과 연극의 신화를 선택한다.
가령, 역사 속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논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당대의 배우를 통해 구현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제 지배자이자 외교 정치가로서 실리를 추구하는 면모는 상업적 로맨스 전략 하에 소거되지만, 관객은
그 이면을 고려하지 않는 환타지에의 욕망을 거대한 영화 무대의 디자인을 통해 만족시킨다. 본편을 감독의 기존
세계와 연관시킬 때, 그간 영화 속 인물에게 통용된 바 있는 주체의 욕망 혹은 그 불구성이 본편에서 거대한
자본의 전시를 통해 충족되는지에 대한 질문이자 응답이 된다. 관객은 결말에서 뱀의 요동을 확인해야만한다.
본편의 역사적 서사가 끊임없는 배신과 분열로 점철되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혹은 유사 오이디푸스의
경로에서 타자화되었던 어머니/여성의 위치를 역사에 기대어 전면화했음에도 종장에서 파국화하는 것 또한
동일한 맥락에 있다. 하지만, 이를 환영해야할지는 주저된다. 전작에서 현재와 과거로부터 변화 회복된 인물은
본편에 이르러 사랑의 아름다운 죽음으로 치장됨으로서 퇴행한다. 할리우드 영화가 가지는 어떤 임무에 따라
역사의 이미지를 구성한다는 것은 과거가 결코 완전히 재현될 수 없음을 진술하는 모순적 행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