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팔을 가진 사나이 (the Man with the Golden Arm, 1955) Otto Preminger

자막자료실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 (the Man with the Golden Arm, 1955) Otto Prem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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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에 관한 영화 두편이예요.

이미 여기도 리뉴얼한 씨네스트 출석부나

럭포에 중독되신 많은 분들이 보이네요...ㅋㅋ

 

40세의 젊은 프랭크 시내트라, 엘리노어 파커, 킴 노박 모두 최고의 전성기에

오토 프레밍거 감독이 멋진 영화를 완성시켰군요.

당연히 007 제9탄 the Man with the Golden Gun(1974) 황금 거시기를 가진 사나이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썰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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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 프랭키는

뛰어난 도박사로 마약에 중독됩니다.

그에게 매달리는 엘리노어도, 그를 돕는 킴 노박도 아주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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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의 풍만한 몸매의 킴 노박 은 피크닉(1955)과 현기증(1958)에서 잘 아실테고

훨씬 더 우아한 매력의 33세 엘리노어 파커 는 형사이야기(1951)에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죠.

물론, 사운드 오브뮤직(1965)에서 우리의 마리아(줄리 앤드류스)에게 까이는 백작 부인으로 나올때 까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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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작업중에 재미있는 표현을 배웠습니다.

Cold Turkey (차가운 칠면조) 라는 말인데

이는 중독상태에서 나타나는 금단증상 (Withdrawal syndrome)을 일컫는 것으로

닭살이 돋으며 오한이 오는 상태를 프랭키는 잘 연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Go Cold Turkey (담배나 마약을 한방에 끊다)라는 말도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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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자막은 홍두깨님의 sub이라고 되어있는데

씽크에 문제가 있어서 고생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외의 오타 일부 교정한 2% 수정자막 입니다.

걸작을 다시 한번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Comments

14 cowboy
감사합니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S 컷과송
2024. 5. 30. 재감상

단 평 : 밖은 없지만, 나갈 수 있다

전작에 이어 다시 버스에서 사람이 내린다. 단지, 전작에서 하차한 사람은 자신의 노래가 부여된 조연이었지만, 본편의
그는 주인공이다. 인물이 귀향했다는 점은 웨스턴의 외부인 자격과 간극을 보이거니와, 서사 역시 내부의 정화를 폐기한다.
이 맥락에서 주시할 것은 본편이 철저하게 스튜디오 내부에서만 촬영되었다는 점이다. 출연진 중 누구도 마을 외부로
나가거나, 버스 등의 교통 수단이 야외장면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즉, 스튜디오는 관념적인 세계이자 전후 미국 사회의
50년대로 표변될 수 있다. 본편이 빌리 와일더의 <잃어버린 주말> 등의 중독 장르와 연쇄된다면 이 맥락을 공유한 것이다.

감독 세계 내로 한정한다면, 기존의 남근성 붕괴에서 전작 <카르멘 존스>가 백인을 삭제하는 경로를 첨언했다면, 본편은
재기하는 통로로 인물을 경유시킴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스튜디오를 잔존시킴으로서 공간적으로서의 장소를 거세시킨다.
여기에 흑백필름이 음악만큼이나 효율적인지는 미지수이지만, 음악으로서의 사운드가 결국 예술적 출구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약 충동의 은유로 언급되는 'Monkey'가 별도의 이미지 연출로 삽입되지 않음도
본편을 내부로 압박한다. 21세기 이후의 현란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인물이 극기하는 골방의 몸부림도 시대적이다.

흥미롭게도, 인물이 도박판의 딜러로서 지친 심신에 충동적으로 처음으로 속임수가 사용하려는 순간에 발각되는
장면은 그의 마술사이자 뮤지션, 스튜디오의 지점들과 더불어 영화 매체를 비관하는 입장으로 해제된다. 본편에서
TV가 보이지 않거나, 시네마스코프의 광역성에 기대지 않는 지점들은 이를 더욱 강화한다. 인물이 출소하여 창문
너머 보이는 첫 풍경이 장애인 조롱이며 귀가하는 집에서 들리는 소음은 비장애를 은폐하는 여성보다 더욱 가혹하다.
인물이 프레임 아래로 사라진다고해도 스튜디오 마을은 그대로 남는다. 이제 겨우 단 한번의 자제가 성공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