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력과 상관없이 본편에는 기이한 장면 하나가 있다. 남성이 인물을 습격한 쇠갈고리 손의 괴한을 쫓아 발코니를 통해
호텔의 옆 방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그것이다. 이 때 관객은 남성의 위험한 행동에 긴장감을 가지며 응시하게된다. 남성은
한번에 바로 괴한(들)의 방에 난입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다른 방을 지나가는데 이 때 방에서 들리는 투숙객의 대사는
"어떤 남자가 창문으로 나를 쳐다봤다'이다. 이를 단순히 히치콕적 패러디라고 단정하기도 전에, 남성은 다시 도약하여
옆 방 괴한들의 방에 도착한다. 이 때, 남성의 첫 동작은 바로 옆 방에서 투숙객의 대사와 동일하게도 창문을 통한 응시다.
익명의 음성이 실제로 행위화되는 과정에서 관객은 그 응시가 가지는 위험함에 집중하게된다. 응시는 징벌당한다라는
사회적 본능에도 불구하고 전술한 기이한 장면이 타협으로 제시된다. 남성은 이미 괴한들과 아는 사이였다. 그렇다면,
왜 남성은 굳이 추락의 위험이 있는 건너뛰기를 통해 그 방에 도착한 것인지 모호하다. 응시가 가지는 영화적 속성이
장치적으로 제공된이라면 남성의 행동은 응시로 도착하기 위한 육체적 비용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응시가 가지는
쾌락이 스크린과의 분리에서 발생하는 데 비해, 남성은 곧 스크린/괴한들과 한 편이라는 일체성으로 자신을 제시한다.
응시해야할 대상으로서의 스크린의 정체성과 하나가 되는 남성은 이름을 매번 바꿀 수 있는 영화 그 자체가 된다.
희귀 우표라는 <도둑맞은 편지>적인 기호에 도착할 때, 그 과정에 초반부 물총을 인물과 남성에게 쏘았던 소년이
내재된 것은 그 우표를 구매한 수집상이 다시 인물에게 우표를 돌려줄 때만큼이나 기이하다. 우표는 결코 그 이후에
화면에서 등장하지 않거니와 최종적으로 위협이 된 배후의 살인자가 제거되는 방식은 극장에서의 추락이다. 그 때,
위협적인 살인자가 인물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응시와 권총의 남근성을 노출할 때, 남성/영화가 이를 무대 아래로
추락시키는 장치를 가동하는 것은 확연히 히치콕적이다. 다만, 남성이 결국 국가의 대리자였음을 알려주는 엔딩은
동시에 국가임을 연기한 살인자가 죽어야하는 이중적 사유가 된다. 하지만, 국가/남성은 왜 여성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단 평 : 항상 곁에 있었어요
연출력과 상관없이 본편에는 기이한 장면 하나가 있다. 남성이 인물을 습격한 쇠갈고리 손의 괴한을 쫓아 발코니를 통해
호텔의 옆 방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그것이다. 이 때 관객은 남성의 위험한 행동에 긴장감을 가지며 응시하게된다. 남성은
한번에 바로 괴한(들)의 방에 난입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다른 방을 지나가는데 이 때 방에서 들리는 투숙객의 대사는
"어떤 남자가 창문으로 나를 쳐다봤다'이다. 이를 단순히 히치콕적 패러디라고 단정하기도 전에, 남성은 다시 도약하여
옆 방 괴한들의 방에 도착한다. 이 때, 남성의 첫 동작은 바로 옆 방에서 투숙객의 대사와 동일하게도 창문을 통한 응시다.
익명의 음성이 실제로 행위화되는 과정에서 관객은 그 응시가 가지는 위험함에 집중하게된다. 응시는 징벌당한다라는
사회적 본능에도 불구하고 전술한 기이한 장면이 타협으로 제시된다. 남성은 이미 괴한들과 아는 사이였다. 그렇다면,
왜 남성은 굳이 추락의 위험이 있는 건너뛰기를 통해 그 방에 도착한 것인지 모호하다. 응시가 가지는 영화적 속성이
장치적으로 제공된이라면 남성의 행동은 응시로 도착하기 위한 육체적 비용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응시가 가지는
쾌락이 스크린과의 분리에서 발생하는 데 비해, 남성은 곧 스크린/괴한들과 한 편이라는 일체성으로 자신을 제시한다.
응시해야할 대상으로서의 스크린의 정체성과 하나가 되는 남성은 이름을 매번 바꿀 수 있는 영화 그 자체가 된다.
희귀 우표라는 <도둑맞은 편지>적인 기호에 도착할 때, 그 과정에 초반부 물총을 인물과 남성에게 쏘았던 소년이
내재된 것은 그 우표를 구매한 수집상이 다시 인물에게 우표를 돌려줄 때만큼이나 기이하다. 우표는 결코 그 이후에
화면에서 등장하지 않거니와 최종적으로 위협이 된 배후의 살인자가 제거되는 방식은 극장에서의 추락이다. 그 때,
위협적인 살인자가 인물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응시와 권총의 남근성을 노출할 때, 남성/영화가 이를 무대 아래로
추락시키는 장치를 가동하는 것은 확연히 히치콕적이다. 다만, 남성이 결국 국가의 대리자였음을 알려주는 엔딩은
동시에 국가임을 연기한 살인자가 죽어야하는 이중적 사유가 된다. 하지만, 국가/남성은 왜 여성에게 말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