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간 (The Children's Hour, 1961)

자막자료실

아이의 시간 (The Children's Hour,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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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번역 및 제작 ; mipell
 

The.Childrens.Hour.1961.1080p.BluRay.X264-AMIABLE.mkv  (8.74GB  9,391,011,270)
싱크수정했습니다.  720p AMIABLE과 동일.
 
윌리암 와일러 감독. 오드리 헵번, 셜리 맥클레인, 그리고 제임스 가너.
다음영화는 '아이들의 시간', 네이버영화는 '아이의 시간'
 

Comments

S 줄리아노
꼭 한번 보려던 영화...

정말 감사합니다.
30 가일123
감사합니다.
29 불량아이
감사합니다.
20 큰바구
소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40 Daaak
참고로 국내 정발 DVD자막과 같은 자막이군요.

감사합니다.
GIVE 50 MP 24 경구리
고맙습니다. 영화 잘 볼게요~
S BJCool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2. 3. 17. 재감상

단  평 : 클로즈업이라는 억압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다시만들기를 수행할 때, 대개의 경우 그 사유는 좀 더 명백히라는 확장,

혹은 시대 변이에 대한 오류의 수정일 수 있다. 흑백과 컬러, 스튜디오와 야외, 카메라의 운용 등이

이를 위한 변형의 동력으로 사용된다. 오즈의 <부초 이야기>와 <부초>와 마찬가지로 본편도 정확히

사반세기의 시간의 경과를 두고 재연되었는데, 오즈의 그것과는 달리 여전히 본편은 흑백을 고집한다.

물론, 레즈비어니즘으로 경로가 수정되었지만 이는 소재에 불과할 뿐 시대성으로 언급될 여지가 없다.



1936년작 <이 세 사람>이 끝의 시작으로서 폐허를 수미상관하면서도 당대의 상업 압력에 순응했다면

25년 후 본편은 자신이 30-40년대 내내 고수했던 평면의 깊이를 통한 거리라는 카메라 운용에 대한

자신감 가득한 신뢰를 반복해서 표출한다. 이 지점에서 본편은 감독의 나머지 작품들과는 관계없이

거의 유언장처럼 다가온다. 여기에 진실과 대면하는 순간의 오드리 헵번의 최악의 얼굴이야말로 감독이

얼마나 여배우의 연기를 섬세하고 적확하게 조정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즉, 거기에는 정답이 없다.



오프닝의 소년들의 자전거들이 일렬로 직진할 때 이는 곧 본편이 상징의 언어가 어떻게 연쇄적으로

구조화되어있는가에 대한 가벼운 은유로 해제된다. 언어의 감옥이나 그 시발이 부르조아 소년이라는

점은 원작과 동일하지만, 본편은 구체적으로 대사를 통해 이를 설명하거나 주변 배역의 극장이라는

장소성을 적극적으로 인유한다. 이토록 과도한 친절성은 오기라기보다 감독의 노파심과 염려에서

비롯된 허술한 배려처럼 보인다. 그 정점에 유리창 밖의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반복이 놓여있다.



물론, 본편은 지젝의 실재계에 대한 편향적인 지적으로 독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윌리엄

와일러의 계보 전체에 해당된다고 해도 본편은 선명하게 언어라는 상징계를 실재가 침입하는 순간

완전히 소멸시킨다는 점에서 제법 강렬하다. 엔딩의 장례식에서 상복의 군중은 기실 상징계의 죽음을

전시하는 기물에 불과하다. 흥미롭게도 본편에서 거울 효과의 상상계가 등장하지 않음은 분열의

주체를 기입하지 않으려는 우연한 실수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엔딩에서 인물이 홀로 상징의

질서 밖으로 나갈 때 거기에 과연 출구가 있는가라는 가능성에의 동의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논제다.

아이들은 시간 내에서 분열하고, 어른들은 언어 안에서 통일된다면, 당도한 실재의 저력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