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달러의 사랑 (How To Steal A Million,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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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달러의 사랑 (How To Steal A Million,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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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보넷(Charles Bonnet: 휴 그리피스 분)은 타고난 예술가로 고호, 세잔느와 같은 유명화가들의 그림을 위조해 그려서 경매시장에 갖다 파는 것을 즐기며 살아간다. 보넷의 외동딸 니콜(Nicole Bonnet: 오드리 헵번 분)은 이런 아버지를 걱정하지만 위조 작품을 그리는 일에 매료되어 있는 아버지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보넷은 비너스 조각상을 박물관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니콜은 그림은 위조가 가능하지만 조각상은 조각을 하는데 사용했던 재질과 기술적 검증 등 여러 가지 검사를 거쳐 진위여부를 가리기 때문에 위험한 짓이라고 말린다. 하지만 평소 보넷을 위대한 예술품 소장가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리몬트 박물관 관장은 비너스 조각상의 진위를 가리지도 않은 채 비너스 조각상을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해 놓는다.   비너스 조각상이 처음 박물관에 전시되던 날, 보넷은 박물관의 비너스 전시 개막식에 참석하고 니콜은 집에 홀로 남는다. 그날 밤, 보넷이 그린 가짜 고호의 그림을 훔치려는 도둑이 집에 든다. 니콜은 이런 도둑을 협박하다가 실수로 그에게 총을 쏘고 만다. 엉뚱하게도 이 도둑은 거꾸로 니콜을 도둑의 말만 듣고 더모트(Simon Dermott: 피터 오툴)을 호텔까지 데려다 주고 더모트와 작별 키스까지 나눈다. 그러던 어느날 보험회사 직원이 찾아와 비너스 조각상에 대한 보험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엉겁결에 보넷은 이에 서명을 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보험회사 직원은 보험 방침상 비너스 조각사에 대한 정밀검사가 있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동안의 위조품 제작 행각이 밝혀질 것이 분명하게 되자 보넷은 몹시 걱정하고 이런 아버지를 지켜보다 못한 니콜은 한가지 묘책을 세운다. 니콜은 더모트를 찾아가 아버지의 비너스 조각상을 박물관에서 훔쳐 줄 것을 요구한다. 그녀는 조각상을 훔쳐 보험회사 측에서 조각상의 진위여부를 가리지 못하게 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더모트는 의아해 하면서도 니콜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비너스 조각상을 훔친다.   하지만 사실 더모트의 정체는 사설탐정이자 런던, 뉴욕, 레닌그라드 등에 있는 박물관의 자문의원이고 예술사를 전공한 박사였던 것이다. 니콜은 더모트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몹시 놀라는 데 이때 니콜의 아버지 보넷이 찾아온다. 더모트는 보넷에게 예술품 위조를 그만 두라고 말하고 니콜에게는 청혼을 한다. 보넷은 더모트에게 약속을 하지만. 니콜과 더모트가 떠나는 날, 평소 자신이 그린 고호 그림을 진짜 그림이라고 믿으며 계속해서 팔라고 성화를 부리던 고객이 다시 찾아오고. 떠나는 니콜과 더모트를 보면서 보넷은 그를 반기며 함께 저택으로 들어간다.
출 처 : 하비 자막 동호회 (http://havy.co.kr)
번 역 : 안나 (anna6860@hotmail.com)

위 자막으로 자막파일 하나로 통합, 싱크수정했습니다.
 

Comments

수고 많으셨습니다..
S 컷과송
2022. 3. 19. 감상

단 평 : 딱 붙어야만한다



물론, 본편은 자기 반영성에 대한 독백이다. 관객은 인물이 침대에서 히치콕을 읽는 것을 볼 수 있고,
(헵번의 흑발은 히치콕과 연결될 수 없었다) 미술관의 조각상들의 시선들이 두 인물의 절도 행위를
지켜봄과 지방시의 의상에 대한 친절한 대사까지 가볍게 청취할 수 있다. 그 끝에는 대가들의 화폭이
있으며 그것이 전시되는 품격이 전달된다. 이는 전작 <편집광>에서의 피카소와 나비 컬렉션의 차이를
복귀시킨다. 죽은 액자와 다양한 자리에의 산 시선의 결과 위에 영화의 영광이 내외적으로 반영된다.

허위를 구별할 수 있는 남근성이 허위임을 알고 있는 여성과 결합될 때 이에는 어떤 거세성의 불온도
허용될 수 없다. 그것이 본편이 지극히 과잉으로 점철되며 모든 리얼리즘의 결핍이 충만되어야하는
이유일 것이다. 가령, 전술했던 지방시의 의상들은 심지어는 청소부의 그것으로까지 침입 차별화되면서
그들의 탈출구가 필름과도 같은 지하로의 나선 계단으로 연결되는 맥락이 여기에 속한다. 그렇다면,
왜 이같은 과장과 반영성은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서 관객은 헵번의 다소 노화된 얼굴을 봐야한다.

현재 한글자막으로 접할 수 없는 감독의 유작은 1970년에 발표되었지만, 이미 본편의 동시대 세계에서
뉴웨이브는 범람하였고, 이는 모던 시네마와 뉴시네마의 파고를 인지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본편은
상업영화의 과잉으로서 혹은 허위가 아닌 진품으로서 자신을 박물관에 안치시키고자 하면서 스스로
고전의 품격을 지향한다. 허위를 퇴출시키는 두 인물이 조그만 청소도구실에 프레임 내 프레임으로
갇혀있을 때 그들 사이가 최소밀착되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리의 소멸이 아니라 하나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