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가의 미녀 (暗黑街の美女 Beauty Of The Underworld ,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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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가의 미녀 (暗黑街の美女 Beauty Of The Underworld ,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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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가의 미녀 暗黑街の美女: Beauty Of The Underworld(1958) : 배반은 나의 보석
 

 

독한 배반, 거짓의 내러티브로 정리될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스즈키 세이준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즐기고 있고 관객 희롱을 자축함이 드러난다.
미노스님은 이번 영상원 닛카츠 100주년 포스터를 보시면서
그 중 본편의 여주인공을 지목하면서 "하나도 예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바로 그 말이야말로 본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이자, 감독의 언술이라 해도 좋겠다.
 
흔히 말하는 <제3의 사나이>를 비롯한 모든 할리우드 느와르물의 영향들을 말하는 것은
아래 <관동무숙>과 <문신일대>에서 <킬 빌>을 언급하는 것만큼이나 영화적 객담이자 신화올리기일 것이다.
그보다 본편에 차분히 천착하여 영화가 가지는 본래의 매혹을 다지는 것이 타당함은 불문가지다.
이 점과 관련하여 지극히 관습적인 오프닝을 언급해도 좋을 것이다.
 
한 남자가 하수도 뚜껑을 열고 내려갈 때
그와 전혀 상관 없는 지나가는 트럭 운전사가 그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쫓아내려가는 것이다.
관객은 여기서 일종의 암살이나 폭발 등의 추가적인 사건을 예상하거나
적어도 트럭 운전수와 이 남자의 추후 극 내의 흐름 관련성을 상정하기 마련인데,
실제로는 어이없게도 주인공과 트럭운전수는 이후 극 내부에서 마주치지 않는다.
( 혹시 마주쳤다해도 관객은 결코 알아볼 수 없다.)
 
장면적으로 굳이 하수구 뚜껑을 열어보고 그 안에 죽은 짐승의 시체를 보고 깜짝 놀라는 트럭 운전사의 모습은
본편이 가지는 관객에 대한 영화적 자세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실질적인 영화 내부를 알 수 없는 겉핡기식 야쿠자물로서 극을 대하는 것에 대한 경계와도 같다.
 
 
영화 내내 일종의 맥거핀으로 던져질 다이아몬드에 대해서 관객은 최초의 남자가 다른 주머니를 차고 있을 것으로 의심한다.
하지만, 위 장면과 같은 평화로운 영화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결코 따로 감추었을지도 모를 보석은 등장하지 않는다.
즉, 별도의 반간계는 존재하지 않고 보석은 처음 등장한 주머니 안의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보석이 머니 환타지로서 작용하는 영화의 물적인 서사 배반의 상징이라면,
목에 등장하는 "암흑가의 미녀"는 결코 '암흑가의 미녀'가 아님이 인적인 캐릭터 배신의 요체가 된다.
그녀의 넓은 얼굴은 물론이고, 싸우나 실에 갇혀 온 몸에 속옷만 입은 채 땀을 흘린 이후에도
여전히 불룩한 상태로 유지되는 뱃살은 흑백이 아니였다면 난감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을 비롯한 야쿠자 두목 등 3명의 남자들의 팔뚝에 보이는 포커 카드의 무늬가 이어질 때
남은 무늬인 하트 문양의 남성이 누구인지를 궁금하게 하면서도 끝까지 밝혀지지 않을 때
관객은 혹시나 그들을 좇아다니는 형사가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진다. 
 
이같은 신체적 배반이 그저 우스개라면 그녀가 결코 암흑가에 연결될 정도의 배역이 아니거니와
그저 행인들에게 갈취하는 수준의 성숙하지 못한 악동 여동생으로 취급되면서
영화가 매 호흡에서 그녀의 성숙도를 긴장감있게 포착하려는 의지도 그다지 뚜렷하지 않고 목적도 되지 못한다.
 
일견 단순한 보석쟁탈전일 뿐인 본편의 서사를 답답할 정도로 늘어뜨리면서
감독의 연출이 보장받으려한 지점은 처음부터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심지어는 주인공 남자와 후배 동생 관계인 여주인공 사이에서 어떤 러브 라인도 생성하지 않는다.
 
배금 풍조와 야쿠자의 비열한 술수가 갸륵할 정도로 전면에 나서지만
그것 역시 연출의 존재감을 감지할 정도가 아니라면
다시 본편안에서 회귀했을 때 잔존하는 지점은 보석의 산화에 다른 허무주의일 뿐이다.
이는 라스트 씬에서 카메라가 병실 너머 새장 속에 갇힌 새를 보여주는 것이
실제 사건이나 주제상의 어떤 측면과도 관련없이 그저 사건의 해결, 결말이라는 기표만으로 사용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암흑가의 미녀>는 보석을 둘러싼 야쿠자 강탈물이라는 장르성을 유지하면서
미녀와 보석라는 외피로서 서사의 배반이라는 초중기 스즈키 세이준의 작가적 인장을 반복하는 허무극이다. 


보스인 오야네 회장 대신 교도소를 다녀온 미야모토. 그는 자신이 숨겨두었던 다이아몬드를 자신의 후배에게 전해주려고 한다. 그 사실을 눈치 챈 오야네는 미야모토의 후배 미하라의 여동생 아키코가 자신의 부하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이용하려한다. 미하라는 밀수상과 오야네 일당의 행보를 눈치채고 도망치다가 목숨을 잃게 된다. 미야모토는 동생 아키코와 사귀는 오야네의 부하 아리타가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그를 쫓는다. 아키코는 다시 그것을 숨기고 오야네 일당과 미야모토와의 다이아몬드 뺏고 뺏기기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미야모토와 오야네 일당의 마지막 대결전이 기다리고 있다.




미야모토가 보석을 숨겨놓는 하수도는 영화 <제 3의 사나이>의 유사한 장면을 빌려온 듯 닮아있다. 그 곳을 걸어오는 미야모토의 그림자, 그가 쓴 중절모도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을 뒤집고 새로 시작하려는 미야모토라는 회생의 인물이 보여줄 수 있는 극도의 비장미를 느껴볼 수 있다. 특히, 미야모토를 연기하는 미즈시마 미츠타로의 비장한 표정과 연기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마지막 오야네의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총격씬이 멋지다. 다이아몬드 앞에 치졸한 본색을 감추지 않는 아리타의 마지막 모습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골룸을 보는 것 같다. "My Precious!"하는 것 같은. 재물 앞에 너무나 나약한 인간의 존재,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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