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쿠바 - 소이 쿠바 (Soy Cuba - I Am Cuba ,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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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쿠바 - 소이 쿠바 (Soy Cuba - I Am Cuba ,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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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번역해 주시길 부탁 합니다.



스페인어 자막 첨부 했습니다

내 이름은 쿠바 - 소이 쿠바 (Soy Cuba - I Am Cuba ,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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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미하일 칼라토조프












체 게바라의 또 다른 나라, 쿠바. 단지 이것때문이었을까, 아님 인디언들에 대한 호기심이었을까, 아님 식민지에 대한 아픔때문이었을까. 어쨌든 라틴아메리카의 나라 쿠바, 라는 것에 나는 이영화를 보기로 결심했다. 아니 우연이었는지, 시작전에 난 그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내 이름은 쿠바.








바다를 배경으로 나레이션으로 들리는 음성은 자신이 쿠바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상기시켜주려는 것처럼,

그리고 배경음악으로 들리는 쿠바의 선율은 한을담고 있는 우리의 음악만큼 한이 서려있다.


처음 저만치 있는 바다에서 배를 보았을때, 그들은 손을 흔들었다. 저들은 또 다른사람이라, 저들은 또 다른 우리라,








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사람도, 또다른 우리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침략자일 뿐이었다.








자본주의의 논리로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여자, 몸을 팔 수 밖에 없는 여자가 있다.

그를 사랑해주는 남자가 과일을 파는 동안(그남자는 과일을 파는일을 한다.) 그녀는 그의 옆에 있다.

그리고 한마디를 건넨다.(건넨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말은 아무렇지 않은 듯 묻혔고, 그때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 이제 어떻게 해."


이말은 쿠바의 절규는 아니었을까. 혹은 혼잣말이거나.








후에 자신이 청혼한 여자가 침략자와 동침한것을 보고는 화를 내며 돌아선다.


그리고 그 침략자, 여자의 십자가가 갖고싶다.(그는 십자가 수집광으로 나온다.) 싫다는 여자를 아랑곳하지 않고 돈을 놓고 십자가를 가져간다. 처음에는 쿠바인들은 물건이 아니라며 말하던 그였다.(마치 다른 침략자들과 다른것처럼,) 침략자 = 약탈자?!

그리고 여자의 집을 나가면서 만나게 된 것은 좁은 골목과 부서진 것들, 그리고 돈을 달라며 구걸하는 아이들, 그럴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노인들이다. 그의 표정은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일그러져 있다. 아니, 기겁-질려-해 있다는 표현이 맞을 표정인가.

그 때 한마디가 들린다.








"내 이름은 쿠바, 당신들에게는 향락과 도박, 금으로 보이겠지만 이것이 내 진짜 모습이다."










리고 사탕수수밭에 한 남자, 침략자에 속아 도장을 찍고, 일을 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두 아이와 사탕수수밭. 하지만 사탕수수밭은 그의 것이 아니다.

죽을 힘을 다해 일하지만 그 땅은 침략자가 팔아버린다. 집? 그런것은 침략자의 상관이 아니다.

사탕수수에게 이제는 네가 날 살릴때라며 정성껏 돌보았던 그.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의 연속이었을 뿐이었고, 그 거짓에 희망을 걸였으며, 그 희망은 거짓으로 변해버렸다.

아이들에게 돈을 주며 놀다오라는 그의 모습은 아버지이지만 속은자요, 돈을 좀더 달라며-놀러간다는 생각에 들뜬 아이들의 모습은 그저 아이들일 뿐이다.

아이들이 그 돈을 들고, 음료수를 사먹고 노래를 듣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다른 빼앗긴자들은 돈을 많이 벌었나보다, 며 넌지시 말을 던진다. 이 모습이 우습기도 슬프기도 아프기도 했다.

아버지이자 속은자의 뒷모습, 그 사탕수수들을 마구 베는 그의 모습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모습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분노, 연민 그 무엇이라도 좋다.



그리고 쿠바의 한 여자, 그 여자를 좇아오는 침략자 - 해군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들은 최고가 아니다. 그저 침략자일 뿐이다.(해군들은 자신들의 침략을 찬양?했다, 망나니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 여자를 구하는 한 남자. 하지만 이내 영화는 그 남자의 모습에 주목한다.

바티스타를 암살하려 하지만 그때 그의 귓전을 맴도는 것은 쿠바의노래이고, 시야에서는 바티스타와 식사를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왜 쿠바는 그의 귓전을 맴돌며 괴롭힐까, 아니 어쩌면 괴롭히고 있다며 그 자신 스스로 받아들이는 문제인가. 성급히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서 긴장감이 일었는지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동료들은 죽고, 그도 죽는다.

한마리 죽은 새를 들고, 그는 지도자가 되어 앞을 선다. 하지만 죽는다. 한번, 두번, 세번... 꽝! (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아니 재미도 안되는 것처럼 하는 경찰-또 다른 침략자.)

그가 죽는 혁명의 광장에서, 그의 장례식 행렬에서 보이는 쿠바의 한 여인은 그 모든 쿠바인의 한 모습이었다.(그 여인은 앞에 해군들에게 좇긴 여인)

쿠바의 국기를 내걸고, 발코니로 나오는 노동자들, 사람들... 아름다웠다. 눈물이 그저 흐르도록.








앞서, 바티스타 암살을 실패하고 돌아와 터널을 지나는 그 젊은이의 모습에서 그 지나가는 이가 나인것만 같았다. 광장에서 쿠바의 모습과 이 장면이 너무나 강렬하게 남았다.


소이쿠바, 내이름은 쿠바이다. 나는 쿠바이다. 그 무엇도 아니고 그저 나일뿐이다.

그 어느것으로 이름지을 수는 없다. 나는 쿠바이다.








유혈혁명은 잘못된것일 수도 있다. 평화만이 방법일 수 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카스트로 -게릴라를 정당화 할 수 있다.

어떠한 방법이든, 인간이 살아가는 한 혁명은 불가피하다. 이점에서 이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고싶다. 그리고 등장하는 모든인물들, 음악, 바다, 그 모든것들이 쿠바 그 자체였다.








세계의 명화, 말 그대로 세계의 명화였다. 흑백영화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영화였다. (흑백이었기에 더 아팠는지도 모른다.)

더불어 너무나... 도 아팠다... ...,












시가의 아련한 연기에서 흑백의 쿠바가 피어오르는다.


그 쿠바의연기가 단어를 만든다. SOY CUBA













등장인물마다 이름이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만큼은 그들에게 쿠바라는 이름을 주고싶다. 그래서 그 각자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티스타와 카스트로의 이름을 언급한것은 나도 모를 무슨 심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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