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의 사나이 The Westerner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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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의 사나이 The Westerner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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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의 사나이 The Westerner (1940)

윌리엄 와일러 감독 게리 쿠퍼, 월터 브레넌 출연

웨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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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컷과송
2022. 3. 6. 감상

단  평 : 몽롱한 승리



서부극은 감독의 계보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장르다. 본편에서 드러나듯이 철저한 이분법적 구도는

팽팽한 긴장보다는 양식화된 관습성으로 인해 거리 자체를 오히려 관객에게서 부재시킨다. 말하자면.

정착민/이주민, 목축업/농업, 판사/방랑자 등의 구도는 표피적으로는 그들 사이의 간격을 좁히기를

거부하고 일종의 정리 작업을 대기시킨다. 감독이 개입하는 지점은 이 간극이 실은 동일체의 양면에

불과함을 진술에서 발견된다. 가령, 판사와 방랑자는 술에 취해 주점의 작은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잔다.



본편은 웨스턴적 규정 하에서 해제됨에 관심이 없다. 모든 서부극이 그러하듯이 모든 것이 수정되고

원전이라는 신기루조차 그것이 원형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수정적이다. 명백 혹은 애석하게도 승부는

그들의 공간 격차에서 이미 판가름난다. 판사를 필두로한 무리에게는 HOUSE/HOME이 제공되지 않고

농민들에게는 부녀 관계등이 배정되는 순간 장르는 이미 회전중이다. 하지만, 전술했듯이 방랑자가

동침하는 것은 여성/HOME이 아닌 판사/알콜이다. 재론하지만, 누가 정의인가는 여기서 중요치 않다.



엄연한 상징계의 법인 판사가 한번도 보지 못한 포스터 속의 여배우를 동경한다는 출발선은 본편이

감독 계보에서 희귀한 영화의 자기반영성을 표출함을 드러낸다. 문제는 본편이 지극히 허술한 B급

무비의 외양으로 이분법적 서사 구도가 헐렁하다 못해 폐기적이라는 것에 있다. 무엇보다, 제목인

4;The Westerner'가 텅 빈 기호에 불과하다. 실제로 해결사는 방랑자가 아니라, 판사를 이동하게한

공연 소식이다. 극장 내부의 대결 총격씬에도 불구하고 이미 판사가 공연장에 군복을 입고 들어선

순간 이미 그는 '죽어있다'. 상징계가 상상계로 퇴행하려는 동경은 실재의 침투를 감내할 수 없다.



엔딩에서 판사가 여배우를 몽롱한 형태로, 곧 검은 스크린으로 인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본편은 서부극적 이항대립을 탈색시키고, 그 자리에 범접할 수 없는 영화의 아우라를 배치시킨다.

진정한 서부인은 농장에 정착한 에필로그가 아니라, 여배우 앞에서 죽어야하는 판사의 기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