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 (晩菊: Late Chrysanthemums,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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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 (晩菊: Late Chrysanthemums,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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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구라하시 긴은 과거에 게이샤였지만 현재는 인근의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다. 그녀는 동경의 시타마치 지역의 안락한 집에서 귀먹어리 식모인 시즈코와 함께 살고 있다. 채무자들에게 악착같이 돈을 받아내는 것으로 악명 높은 그녀는 자주 불평과 비꼼을 당하기 일쑤다. 긴의 채무자들 중 한 명인 다마에는 그녀의 옛 게이샤 동료로 부유하고 나이 많은 여자와 어울리는 아들 기요시를 걱정한다. 이러한 '돈과 사랑 '이라는 주제는 긴의 옛사랑인 다베가 그녀를 찾아왔을 때 깊이를 더해간다. 긴은 다베가 찾아온 실제 목적을 알고는 씁쓸함을 맛본다. (서울시네마떼끄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에서)
나루세 미키오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일본어 대사가 아닌 영어 자막을 번역한 것입니다.
 

Comments

1 그냥..
고맙습니다.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보고 반한 감독인데...
이 영화는 아직 못봤네요.
잘보겠습니다 ^^
1 겨울그림
수고하셨습니다
잘 보겠습니다
13 riverpitt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7 kearn
감사합니다!!!
S dreammaker
잘 보겠습니다 .
40 Daaak
감사합니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S 컷과송
2021. 5. 26,. 재감상

단 평 : 내려가는 계단에는 '終'이 불허된다.

능동도 수동도 허락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심연으로서의 허무가 생래적인 피부도,
살기어린 방패도 되지 못한다면 경계가 아닌 그 기반으로서의 지점을 승인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물들은 내내 지금 여기'에/를' 속박당하거나 지휘하면서도 어느 순간 과거 저기에서도 동일하게
속박당하거나 지휘한다. 시간의 처지 혹은 권세는 본능적인 돌아봄을 부여함에 있다기보다는 그
과정 안에서 언제나 동일한 모순의 좌표를 제공함에 있을 것이다. 즉, 자리는 오래 지속된다.

본편의 잔인함은 엔딩에 있다.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에서 반복되는 마지막은 인물의 후면을 떨어져
지켜봄에 있다. 정확히 거기에는 정중하게 끝을 고지하는 종 '終'의 기입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엔딩 이전에 본편에서 '나란히 걸음'이 전혀 허락되지 않음을 지적함은 필수적이다. 부연하자면,
단순히 나란히 걷는 동작이 아니라 그들이 말을 나눈다라는 행위가 정서의 향방으로서 주제의
거시성을 함몰시키는 구석이 존재했다. 이가 가능했던 바는 그 장소가 가로의 평행선이기 때문이다.

결말부에 두 계열의 인물들은 나란히 걷지만, 그'것/곳'은 상승과 하강하는 계단에서만 각기 허락된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화면 밖으로 대화를 전달하지 못하거나, 아마도 대화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더 가혹하게 추가하자면, 상승의 계단에서 인물은 가역적인 육체로의 도발을 시도하며 웃지만 결코
나란히 걷지 못하거니와, 하강의 계단에서는 기차를 보여주지 않고 완전히 암전된 다음에 서서히
종 終을 부여받는다. 이것을 일종의 단절이라 한다면 성급하다. 거기에는 심연이 있다. 당신이 심연을
바라보듯이 심연도 당신을 바라본다면 이 심연에 대해 관객은 능동과 수동 어느 쪽을 배당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