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 (Ben-Hur, 1959) 1080p.BluRay.X264-AMIABLE

자막자료실

벤허 (Ben-Hur, 1959) 1080p.BluRay.X264-AMIABLE

https://cineaste.co.kr/bbs/board.php?bo_table=psd_caption&wr_id=737179
*50주년 기념판* 
BluRay Disc1, Disc2에서 각각 한글 섭자막 추출 후 병합
- 한글 섭자막 변환
- 섭자막 첨부
- 23.976fps
 
 기존 DVD섭자막에서 표기한 지명, 인명을
 현재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바꾼 듯
 


 

Comments

29 불량아이
고맙습니다.
S 컷과송
2022. 3. 16. 감상

단  평 : 감히 어찌 거리를 둘 수 있을 것인가



할리우드 고전기의 종교극들에는 중세 성화를 상기시키는 공유점이 있음을 먼저 진술할 필요가 있겠다.

감히 도상화할 수 없는 것들, 정확히는 원형을 인지할 수 없기에 이를 현현할 수 없는 관념에는 신이라는

외적 존재(?)가 있다는 강령 하에 한동안 어떤 성상이나 성화도 그려질 수 없었던 시기를 복귀시키는

이 장르물에서 예수를 비롯한 어떤 신적 외부자도 그 얼굴을 감히 스크린에 드러낼 수 없었다. 이는

당대의 불문율로서 이것이 일련의 Christ 라는 기표의 변형으로 신성모독이 자유화된 최근 30여년의

작품들을 경유한 입장에서는 다소 황망하기까지 하다. 이는 그만큼 가장 강력한 거리감으로 잔존한다.



본편은 감독의 계보 내에서 유지되었던 거리의 실종이라는 완연한 구별점을 노출시킨다. 기존의 작품이

이분법화된 진영이나 인물, 공간에 조성한 거리를 통해 심리를 승리한 변증법으로 종결시켰을 때 이의

중심은 결론이라기보다 그 과정 상에서의 거리의 깊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본편에서 인물은 마땅한

대척점이 없다. 적대자로서 배정된 인물이 있지만, 그는 초후반부에서 거의 삭제되거니와 나머지 인물은

마치 서사의 단락을 연쇄시키기 위해 순차적으로 좌표화된 듯 하다. 그들은 그저 타자화된 기점들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본편은 서사적으로 실패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남근성, 동성애, 종교성 등

무엇이든간에 하나의 일자가 이미 예정된 경로를 통과하는 방식의 본질주의는 장르의 폐쇄성이 생성한

최악의 압축이다. 결말부 인물과 예수를 포착한 머나먼 카메라의 숏에서 후면의 예수와는 달리 점처럼

분간되지않는 인물의 면모가 안쓰러운 사유는 이에 있다. 둘 사이의 프레임 내부 직선 거리의 함축성이

정작 관객에게 스펙타클의 승리 이후에 전달될 때 그것이 신비화된다기보다는 다음 임무로 들어서는

자의 준비단계처럼 보인다. 인물이 몇 명의 아버지(최후에는 예수)를 경유하면서 그들과 협력하는 과정은

실재적인 오이디푸스를 배반하고 이미 상징화된 질서 안에 자신을 위리안치시키는 기이한 형벌이 된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1 스시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