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 , 1963년) 광기에 찬 아이들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 , 1963년) 광기에 찬 아이들
파리대왕
원제 : Lord of The Flies
1963년 영국영화
감독 : 피터 브룩
원작 : 윌리암 골딩
출연 : 제임스 오브리, 톰 채핀, 휴 에드워즈
로저 엘윈
파리대왕은 노벨상 수상작가인 영국의 윌리암 골딩의 유명한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윌리암 골딩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1983년으로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아직 수상을
하기 전이었습니다. 후에 노벨상을 타고 나서 이 영화가 다시 주목받게 되었고, 1990년에
미국에서 리메이크판이 만들어졌습니다. 흑백으로 먼저 만들어진 작품은 1963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영국의 어린 학생들을 태우고 가던 비행기가 추락하여 바다에 떨어지고 생존한 소년들은
섬에 고립됩니다. 랄프와 피기가 먼저 만나게 되고 이어 소년들이 여럿 나타나게 됩니다.
그들이 서로 이름을 묻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같은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열을 맞추어
등장합니다. 그들의 리더는 잭 이라는 소년이고 나머지 소년들은 잭의 지휘에 따르는
'부하들'같은 존재입니다. 모인 소년들은 대장을 뽑아서 질서를 유지하기로 하는데
잭은 자기가 대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랄프를 투표로 정하자고 합니다. 잭을
따르던 아이들을 잭에게 투표하지만 나머지 아이들을 랄프를 지지하여 랄프가 대장으로
선출됩니다. 랄프를 소라고동을 가진 아이에게 발언권을 주는 룰을 만들어 소라고동을
권력의 상징으로 정합니다.
자, 일단 이렇게 무인도에 고립된 소년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무대가 꾸며집니다. 사실
비행기가 추락했는데 조종사는 죽고 소년들만 아무런 부상없이 살아남았다는 설정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것이지만 이 이야기는 그런 과정 자체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서 보여주고자
하는 내용은 아무도 없는 곳에 고립된 아이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사악함과 권력의
탐욕과 질서의 파괴와 집단광기 입니다.
피기(왼쪽)와 랄프
잭 일행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등장
군대에서 사열하듯 유니폼을 입고 열 맞추어 등장한다.
잭 일행의 등장을 호기심있게 바라보는 소년들
대장이 된 랄프는 어른들에게 구조되어 무사히 부모에게 돌아가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섬에 불을 피워서 구조대가 지나갈 경우 볼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잭 일행은 구조되는
것보다 먹을 것을 사냥하고 배불리 먹는 것을 더 중요시 여깁니다. 잭 일행이 보초를 소홀히
하여 불을 꺼뜨리자 잭과 랄프는 대립을 하게 됩니다. 랄프는 불을 꺼뜨린 것을 책망하지만
잭은 사냥을 하고 먹을것을 구해오는 것은 자기네들이지만 대장인 랄프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무시합니다. 또한 랄프와 친한 피기를 괴롭히는 것을 즐깁니다. 점점 대립되어가는
잭과 랄프, 결국 잭은 랄프가 대장인 것을 인정하지 않고 반기를 들게 되고 아이들을 규합합니다.
사냥을 하고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중요시하는 잭에게 아이들은 점점 선동되고 결국 잭과
피기는 점점 고립되어 갑니다.
여기서 랄프와 잭의 갈등구조를 심화하기 위하여 몇가지 도구가 사용됩니다. 우선 아이들은
섬에 추락한 낙하산병을 괴물로 오인하게 되고 바닷가의 보금자리를 지키자는 랄프와 괴물사냥을
떠나자는 잭이 대립하는 원인이 됩니다. 또한 구조대를 발견하는 것을 중시하는 랄프와 먹을것을
구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잭의 성향도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랄프에게 섬은 빨리 탈출하고
구조가 필요한 장소이지만 잭에게는 권력을 차지하고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하나의
'권력 사회'같은 장소입니다. 잭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피기역시 잭과 랄프의 갈등구조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잭은 피기와 친한 랄프를 비아냥거리고 피기가 쓰고 있는 안경은 불을 피울 수
있는 중요한 생존도구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 안경이 나중에 큰 사건을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소년들의 대장으로 선출된 랄프.
'포화속으로'의 탑이 연상된다.
괴물 사냥에 나선 랄프와 잭(왼쪽)
잭 일행들의 무질서한 행동에 불만이 많은 랄프
아이들이 하나씩 둘 씩 잭에게 합류하고 결국 랄프는 대장으로서의 지위가 의미가 없게 됩니다.
점점 광폭해져가는 잭 일행, 미친 무리처럼 광란의 파티를 여는 아이들은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고
맙니다. 그러한 사고를 보고 랄프는 무척 충격을 받지만 잭 일행들의 광란은 더욱 심해집니다.
마치 제왕처럼 군림하며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해가는 잭, 이런 잭 무리들에게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빨리 섬을 탈출해야 하는 위기감을 느끼는 랄프, 결국 랄프와 피기는 잭 일당
들의 '사냥감'같은 존재가 되어 갑니다.
무인도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세계는 마치 우리 현실속에서의 어른들 사회의
축소판 같습니다. 선한자와 악한자, 약자를 괴롭히는 무리들. 권력과 폭력으로 집단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두목, 아이들의 이러한 행태는 조폭의 세계나 권력의 세계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인간의
악한 본성과 야만적 본능이 점점 광란을 더해가는 아이들에 의해서 묘사됩니다. 살인이 벌어져도
꿈쩍않는 아이들. 질서를 파괴하고 힘에 의한 새로운 질서를 다시 만드는 아이들. 두려움에
어쩔 수 없이 악의 무리에 합류하는 아이들..... 절대적인 잭의 세력에 대항하기에는 '선역'의 랄프와
피기는 점점 무기력해져 보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필사적으로 잭 일행을 피해 도망치던 랄프가 불을 보고 섬에 상륙한
어른들(구조대)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마치 생존을 위한 무시무시한 정글 같던 섬은 구조대인
어른을 발견하는 순간 광란의 살육이 벌어졌던 섬은 마치 아이들의 놀이가 끝난 놀이터 같은
느낌이 밀려옵니다.
점점 섬의 절대 권력자로 군림하는 잭
잭에게 합류한 소년들
이들은 점점 광기의 집단으로 변해간다.
잭이 장악한 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의논하는
피기와 랄프. 둘은 위험을 느낀다.
'파리대왕'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사실 멀리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학창시절'에서도 동질감이
있는 내용들입니다. 권상우 주연의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권력의 가진 '캡틴'역할을 하는 학생과
그를 따르는 불량학생들, 그리고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무기력한 학생들도 나누어집니다.
이러한 장면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라는 주인공을 통해서도 묘사됩니다.
초중고교 시절을 돌아보면 반에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불량스런 친구를 기억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파리대왕'에서의 아이들의 세계는 굳이 '무인도'를 찾아가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서도 얼만든지 벌어지는 구조입니다. 다만 학교에서는 '교사'나 '학부모'같은 더 큰
통제권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만 '무인도'라는 공간을 그야말로 일종의 무풍지대 같은 역할입니다.
그래서 초등학생 나이의 어린 학생들이지만 살인이 벌어지고 흉폭한 광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도
공감이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인간의 본성'은 결국 사악한 광기가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요? 인간사회에서의 '법률'과 '도덕'은
그러한 악한 본능을 잠재우고 억압하기 위한 '필수적 수단'일까요? 강하고 정의로운 영웅이 등장하여
악을 모두 쓸어버리는 '어른들의 액션물'과는 달리 파리대왕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악의 무리에
대항하지 못하는 무기력함이 보여집니다.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더 강하고 더 가진자가 권력을 차지하고
다른 사람을 장악 통제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과 생존의 모습'이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잭과 맞서는 랄프. 하지만 이미 모든 아이들은
잭의 손에 넘어가버린 상태다.
1시간 30분의 짧은 흑백영화이며 등장인물들이 모두 어린 소년들뿐인 이 영화는(참고로 여자아이는
한 명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치 전쟁놀이같은 아이들의 고립과 대립을 통하여 인간의 악한 본성을
보여주었던 꽤 강한 인상의 내용이었습니다. '악의 응징'이 아닌 '구조'로 끝나는 부분도 무척
인상적입니다. 구조된 아이들은 결국 다시 그들이 벌였던 '놀이'가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생존의
터전'인 어른들의 사회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겠죠. 어찌되었든 어른이 나타남으로써 아이들의
'놀이'는 사실상 종료된 것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학교다닐 때 멍청한 선생님과 똑똑한 선생님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멍청한 선생님은
무조건 공부 1등하는 학생을 반장으로 뽑고, 똑똑한 선생님은 성적은 약간 떨어지더라도 아이들을
통솔하고 못된 학생들에게서 보호할 수 있는 강하고 의로운 학생을 반장으로 뽑습니다.
공부 잘하지만 무기력한 반장보다는 불량학생들로부터 약한 아이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든든한 반장이 훨씬 바람직한 것이죠.
ps2 : 파리대왕의 내용처럼 반을 장악한 '캡틴'무리와 어울려 다니는 아이들중에 본성이 나쁘지
않은 아이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아이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보호하기 위하여 결국
'절대권력'과 타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그걸 '굴종의 열매'
라고 표현했습니다.
ps3 : 포화속으로에서 탑과 권상우의 대립이 마치 여기서의 랄프와 잭의 대립을 연상케 합니다.
혹시 이 영화를 보고 모방한 것 아닐까요?
ps4 : 국내 출시된 DVD의 앞 표지에는 엉뚱하게도 '제니퍼 존스' '반 헤플린' '루이 주르당'이라는
낯익은 고전배우들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이들 배우들은 이 영화에 출연하지도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