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Laura).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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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Laura).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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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오토 플레밍거

 필름 누아르
 

Comments

1 darthez
감사합니다
1 일파
고맙습니다
9 공처가
감사합니다.
S rayphie
고맙습니다.
26 로카롤라
고생하셨습니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S 컷과송
2024. 5. 20. 감상

단 평 : 사냥꾼의 꿈

사냥에는 실익이 있어야한다. 만일 결과물이 없는 사냥이라면 그것은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사냥은 의,식,주와 관련되어 교환된다. 본편에서 뒤집어진 팜므 파탈로서의 여성의 성은 'Hunt'인데, 이는 그녀가
누군가를 사냥한다는 맥락을 주입시킨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누구를 기획적으로 사냥하는 위치에 배정되지 않는다.
본편을 40년대 느와르 내부로 간단히 분류하지 못하는 수정주의적 사유는 여기에 있다. 혹은 당대의 다른 느와르가
우회해서 진술했던 지점에서 본편은 시작한다. 가령, 팔루스적 아버지의 첫 등장은 출생처럼 욕조의 나신인 것과 같다.

아버지는 왜 몰락해야하는가보다는 몰락하는 과정으로서의 피그말리온은 철저하게 자기애적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꿰매진 기형이 던진 충격은 이같은 자기애의 붕괴를 기계적 이미지화한데 있다. 자신이 완벽하기 때문에 조각 역시
최상일 것이라는 환상을 본편에서 'Hunt'로서의 여성은 잠시 파괴한다. 여기서 논점은 그것이 임시적이라는 것인데,
결국 그녀의 생환을 처음 맞이하는 것은 국가이자 불사신의 신체적 사연을 내재한 형사라는 점은 서사를 불구적으로
추락시킨다. 중반부 초상화 아래 형사가 잠든 이후에 대한 실재 가능성은 이같은 관점에서 오히려 반역적일 수 있다.

아버지가 창조한 것은 가역성이다. 그가 착각의 살인 도구인 총을 은닉한 장소는 벽시계이며, 그가 최종적으로
발사한 탄환이 박살내는 것도 역시 시계다. 즉, 창조는 시간을 박제하는 것인데, 이를 형사는 꿈의 신체를 생환하여
불구화한다. 팜므파탈에 대한 징벌이 부재하다면, 혹은 이미지로서 실재에 대한 위협이 제기되지 않는다면 본편의
장르적 좌표는 근친의 분리불안이 아니라, 환상의 역습에 가깝다. 정확히 말하자면, 환상 그 자체는 어떤 역습도
하지 않는데, 애초 아버지 스스로가 환상 그 자체다. 이같은 맥락에서 매듭은 잘려지지 않고 영원히 묶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