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번역 작가들도, 심지어 방송사도 자주 틀리는 맞춤법 10개

자막제작자포럼

현직 번역 작가들도, 심지어 방송사도 자주 틀리는 맞춤법 10개

2 Epiphanes 10 4767 8
안녕하세요, 씨네스트 회원 여러분

다들 그렇듯이 저도 개인적으로

미드나 미국 애니메이션 자막을 만들어서

인터넷을 통해 배포하다가

어떻게 운이 좋아서 케이블 방송물도 번역하고 있고

케이블 방송사에서 하청을 주는

번역 업체에 입사해서 번역물 검수도 1년 정도 봤습니다

점점 경력이 쌓이면서 정말 많은 분들의 번역을 봤고

그러다 보니 공통적으로 자주 틀리는 게

몇 개 보여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다시 이곳에 올리는 것임을 밝힙니다)


-------------------- 본문 --------------------

물론 저도 쪼렙이라서 우리말 겨루기를 보면 털리는 게 일상이지만

그래도 번역물 검수를 1년 정도 하다 보니까

남들이 자주 틀리는 게 눈에 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케이블 방송사는 정말 엉망인 곳 많아요
 자체적으로 만든 EPK 보면 ㅎㄷㄷㄷㄷ)

그래서 일단 우리말 맞춤법이기도 하고

이곳에는 번역에 관심 가지는 분들이 많이 있으니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서 써 보겠습니다


1) 명사 뒤에 붙이는`이요'

이건 대체 어디서 이런 게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Q: 넌 책이 좋니? 만화책이 좋니? A: 만화책이요

라고 많이 쓰지만 `만화책요'라고 써야 합니다

제가 회사 들어갔을 때도 회사 사람들이 `이요'가 옳다고 하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국립국어원 전화 찬스로(1599-9979) 물어보니

`이요'는 절대 아니라고 상담원이 아주 열변을 토하더군요

`이요'를 쓰는 경우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오'와 같이
 
중간에 연결형 어미로 쓰일 때뿐입니다!


2) 거리 이름 뒤에 붙이는 `가'

여기서 틀릴 게 뭐가 있냐고요?

`프랭클린 가', `27번가'라고 써야 하기 때문이죠

이것도 제대로 쓰는 사람이 정말 드물더군요


3) `못 하다', `못하다'의 구분

`바이올린 연주를 못 하다' = 뭔가 사정이 있어서 연주 자체를 할 수 없었다
(to be or not to be의 문제)

`바이올린 연주를 못하다' = 바이올린 연주를 개판으로 했다
(능력의 문제)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은 `못' 앞에

`지', `질', `지도', `지는', `지를' 시리즈가 오면 붙여서 써야 합니다

`바이올린 연주를 하지도 못했다' 이렇게...

이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중간에 `잘'이라는 단어의 유무로

그 의미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4) 바라다, 바래다

바라다 = ~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하길 바라 (바래x)

바래다 =  빛이 바래다, 색이 바래다


5) 신 나다, 화나다. 개념 있다, 재미없다

`화나다', `재미있다', `재미없다' 같은 합성어 빼고는 다 띄어서 써야 합니다

근데 저도 `신 나다'는 특별히 피드백 없으면 그냥 붙여서 쓰곤 합니다

근데 꼭 띄어서 써 달라는 채널(올x브)도 있어요!


6) `이에요. `예요'

`식탁이에요', `의자예요'인데 `의자에요'라고 은근히 많이 쓰더군요

`아니에요'는 `아니예요'로 쓰는 분들도 있고...


7) 맞추다, 맞히다

맞추다 = 퍼즐을 맞추다, 답안지를 맞춰 본다(서로 비교해 본다), 짝을 맞추다

맞히다 = 과녁을 맞히다, 정답을 맞히다, 알아맞히다


8) 하던, 하건, 하든

하던 = 덕질만 `하던' 시절

하건, 하든 = 하건 말건, 하든지 말든지


9) 백두산, 에베레스트 산, 바이칼 호, 타이타닉호

'강/산/천' 따위는 우리나라 지명이면 붙여 쓰고, 외국 지명이면 띄어서 써야 합니다

외국 지명은 이름 자체가 '산/강' 따위로 끝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고

우리나라 지명은 잘 알기에 붙여서 씁니다

그리고 외래어 뒤에서 `호수'를 뜻하는 `호'는 띄어 쓰지만

`선박, 비행기'를 뜻하는 `호'는 붙여서 씁니다


10) 본용언, 보조용언의 띄어쓰기

이게 진짜 끝판 대장인데...

본용언 + 본용언은 무조건 띄어서 쓰고

본용언 + 보조용언은 일단 띄어서 쓰는 게 원칙이지만

붙여서 쓰는 것도 허용됩니다

다만 본용언 + 본용언이냐 본용언 + 보조용언이냐가

의미상으로 구분된다는 게 문제죠

예를 들어 `사과를 깎아 주다'라는 문장은

`깎다' + `주다'의 형태인데

저 두 개를 분해해서 봐도 각각 말이 되기 때문에
(사과를 `깎다' 말이 됨, 사과를 `주다' 말이 됨)

본용언 + 본용언이 됩니다

그런데 `값을 깎아 주다'라는 문장을 보면

똑같은 `깎아 주다'인데도

`값을 깎다'는 말이 되지만 `값을 주다'는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이 경우는 본용언 + 보조용언으로 보고 붙여서 쓸 수도 있습니다

근데 이렇게 하나하나 의미상으로 따지고 있으면 시간 다 가니까
(`왔다 가다', `왔다 간다', `왔다 갈 거다', `왔다 갔다'
 `깎아 내다', `깎아 넣다', `깎아 놓다', `깎아 놨다'
 `갖다 달란다', `갖다 대다', `갖다 댄다', `갖다 댈 거다', `갖다 댔다'
 `해 두다', `해 둔다', `해 둘 거다', `해 뒀다', 해 뒀다'
 `먹어 버리다', `먹어 보다', `먹어 본다', `먹어 볼 거다', `먹어 봐라', `먹어 봤다', `만나 뵙다'
 `갔다 오다', `갔다 온다', `갔다 올 거다', `갔다 와라', `갔다 왔다'
 `해 주다', `해 준다', 해 줄 거다', `해 줘라', `해 줬다' 등등)

그냥 다 띄어서 쓰고 몇몇 합성어만 붙여서 쓰는 게 편하고

케이블 방송사에서도 이렇게 갑니다

근데 또 합성어가 엄청 많아요! 규칙도 모르겠고!

`알아내다', `물어보다', `지나가다', `다녀가다', `도와주다', `들여다보다', `늘어놓다',

`내려놓다', `올려놓다', `올려다보다', `내려다보다', `쳐다보다' 등등이 있는데 어후...

딱 봐도 위에 적힌 예랑 비슷한 게 있는데 뭐는 합성어라서 꼭 붙여서 써야 하고

뭐는 띄어서 써야 할 때도 있고... 참 개판 5분 전이죠...

그래서 전 그냥 일단 본능적으로 다 띄우고 난 다음에

막판에 맞춤법 검사기 돌려서 합성어를 걸러 내는 방법을 씁니다
(http://speller.cs.pusan.ac.kr/ 이게 가끔 먹통일 때가 있는데
 그러면 http://164.125.36.49/ 여기로 들어가면 됩니다
 맞춤법 검사기가 다른 건 몰라도 합성어는 기가 막히게 걸러 내거든요)

단! 주의해야 하는 게...

`부탁이나 요구를 들어주다'의 `들어주다'는 합성어라서 붙여서 쓰고

부탁이나 요구가 아닌 경우의 `들어주다'는 `들어 주다'로 띄어서 써야 합니다

근데 이 항목은 정말 현직 작가들도 엉망진창이에요...


이렇게 10개를 써 봤는데, 어때요? 별로 안 어렵죠?

이 외에도, `다르다, 틀리다', `이것밖에, `이것 밖에'

`뭐하다', `뭐 하다', `안됐다', `안 됐다' 등등 더 있지만

이거라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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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pluto  
하하하하!!! 하나도 안 어렵습니다. 넵! ㅠㅠ

뭐가 뭔지 참... 띄어쓰기는 정말 대박이에요.
자막 할 때마다 찾아보기도 하는데 머리가 돌이라 찾아봤던 것도 기억 안 나서 또 찾고...
정말 어려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신.. 댓글에서 틀린 부분 찾기 없깁니다.
10 빔나이트  
나름 맞춤법에 신경을 쓰고 있긴 한데, 여전히 모르는 게 참 많군요.
난 도대체 얼마나 많이 틀렸단 말인가? 0TL
1 아지랑이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글 올리신 분의 우리말 바로 쓰기 정신이 그대로 와 닿습니다. 그런데 한 군데는 잘못됐군요. 1) '이요' 설명에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가 아니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오'가 맞습니다. 종결어미는 '이요'가 아니라 '이오'를 써야 합니다. 그리고 '못 하다'와 '못하다'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습니다. 늘 붙여 쓰는 게 더 타당하다는 한글 학자들의 의견도 많아요.
 
---------- 다음은 글 올리신 분과 상관없는 우리말 쓰기에 관한 얘기-----------
 
1)과 관련해서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우리나라 사람 99.9%가 제대로 쓰질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 올라오는 자막도 다른 부분은 거의 완벽하더라도 이것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틀립니다. 예를 들어 "너 뭐 먹니?"란 질문에 대한 답은 "밥요"('요'는 '이오'가 줄어든 말)가 맞는데 대부분이" 밥이요"라고 잘못(또는 잘 못) 쓰고 있습니다. 자음으로 끝날 때는 맞게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반면 모음으로 끝날 때는 틀리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는 이어지는 발음의 매끄러움 때문이겠지요. 같은 질문에 "김치요" 대신 "김치이요"라고는 안 하죠.
 
그 밖에 붙여 써야 하는 <ㄴ걸, ㄹ걸, 는걸, 을걸>, <ㄴ지, ㄹ지, ㄹ는지>도 많이들 틀립니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무슨 말하는 거야?"란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로 써야 하죠. '무슨'이 형용사니까 뒤에 동사가 아니라 목적어가 와야죠. 이건 우리말뿐만 아니라 모든 언어의 기본입니다. '강제(로) 전역했다', '강제 전역(을) 했다' 등의 표현은 어떻게 띄어쓰기를 하든 둘 다 맞는 겁니다. 같은 이치로 '작별 인사하다'도 맞고 '작별 인사 하다'도 맞습니다. 우리말은 쉽지만 우리글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음은 전에 제가 이곳에 올린 글인데 읽어 보시면 우리말과 우리글 실력 향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겁니다.
2 Epiphanes  
앗, 지적 감사드립니다! 산은 산이요(연결형 어미), 물은 물이오(종결형 어미 이오) 이렇게 써야 하는 군요!
그런데 `무슨 말 하는 거야'에서 `무슨'은 관형사 아닌가요?
그리고 링크해 주신 글 너무 좋네요! 지금 열심히 읽는 중입니다!
1 아지랑이  
이런! 맞습니다. 형용사가 아니라 관형사죠. * _ ^ 우리말 장점이 아무렇게(?)나 써도 뜻이 통하니까 제가 남의 글 지적을 잘 안 하는데 게시물 취지에 맞게 한 번만 더 할 테니 너그러이 이해하시기를... 하는 군요>하는군요.
12 모래비  
10번만 빼고.. 어흠!
10 롤두  
한국어 수업 좀 들어봤었는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번역을 업으로 삼는다면 신경 써야할 일이겠지만, 
전 스트레스 많이 받아가며 하고 싶진 않네요^^  고생이 많으셔요~~

참, 정말 궁금했던 질문이 있는데요.
케이블 방송 자막 보다보면 상대방이 누가 됐건
자신을 지칭할 때, "제가"라는 말 대신 "내가"라는 말을 쓰던데
그건 케이블의 요구인지 아님 영어는 높임말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쓰는건지 늘 궁금했어요.
왜 그런지 알 수 있을까요??

시네스트도 자주 들러주세요^^ 그럼 꾸벅~
S MacCyber  
찾아보고 확인하면서 작업 해도 어차피 100% 완벽은 불가능할 테고요...
저는 어법에 틀리더라도 실생활의 표현을 쓰려고 하는 편입니다.
 
위에 '~테고요'도 '~테구요'로 쓰려다 게시물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ㅎ
'네가'도 대놓고(?) '니가'로 씁니다.  번역 대사에서 '~있고요' '네가~' 식이
나오면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 때문이죠.  영화 속의 다양한 외국인들이
한글 맞춤법에 맞게 또박또박 말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좀 어색하지 않나요? ㅎ
 
자막의 맞춤법 노출이 다소 공공적인 성격이 있지만 방송이나 공식적인
작업이 아닌 한은 실제 사용하는 말에 더 가까운 표현을 아주 조금씩은
사용한다는 게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25 simonlee  
좋은 글 고맙습니다!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