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도 작게 시작했다(Even.Dwarfs.Started.Small.1971, 베르너 헤어조크)

자막제작자포럼

난장이도 작게 시작했다(Even.Dwarfs.Started.Small.1971, 베르너 헤어조크)

영화의 등장인물 전부가 난쟁이인 영화. 이 작품에서 '난쟁이'는 인류를 가리키는 은유로 쓰이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난쟁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동일한 장애와 한계를 갖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보다 못한 단점을 지닌 다른 난쟁이들을 괴롭히는데 주력한다.

이를테면 좀 더 키가 작거나 장님인 난쟁이들을 괴롭히는 식이다. 영화의 이런 테마는 자신이 가진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좀 더 많은 한계를 가진 대상에게 자신의 폭력적인 양상을 투영하는 인류를 강렬히 빗대고 있다.

- 2002 부천국제영화제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은

세계영화계에 독일영화의 중흥을 알린 '뉴저먼 시네마',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로 대표되는 이 경향은 1962년 2월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고, 우리는 새로운 영화를 믿고 새롭게 나아갈 것이다." 라는 <오버하우젠 선언>을 통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2차 대전을 거치며 이전의 고유 전통과 단절된 기존의 독일영화에 대한 대안으로 출발하였다.

본명은 베르너 슈티페티치(Werner Stipetic). 1942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의 작스랑에서 태어났다. 전후의 어려운 상황에서 유고 출신의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가난에 찌든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영화에 대한 강한 열정은, 이미 15세에 첫번째 영화 대본을 쓰고, 17세에는 첫번째 영화를 만들려고 시도하게 한다.

학교 생활이 싫었던 그는 18세에 집을 떠나 전세계를 여행하고 아프리카의 수단을 여행하던 중에는 병에 걸려 꼼짝 못하게 되어 창고에서 쥐들과 닷새간이나 같이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독일로 돌아와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철공소에서 용접일을 하면서 모든 돈을 가지고 첫번째 단편 <헤라클레스>를 찍게 된다.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멕시코 국경 부근에서 무기와 가전 제품 밀매를 하여 돈을 벌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이력에는 미국 추방이라는 항목도 있다.

31살에 만든 <아귀레, 신의 분노>는 페루 아마존 강 상류의 정글에서 현지 촬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0년 후 <피츠 까랄도>를 제작하기 위해 아마존으로 돌아가 클라우스 킨스키와 함께 다시 작업했다.

헤어조크 영화의 주된 테마는 극한적인 상황에서 극단적인 목표를 추구해 가는, 그 고통 속에서 결코 희망적이라고 할 수 없는 현실과 직면하는 우리들의 또 다른 모습이다. 헤어조크의 영화는 기이하고 폭력적이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아웃사이더이고, 주변부 인물들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처받은 경우가 흔하며 패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무너져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로 헤어조크를 숙명론자라고 그리고 비정상을 사변적으로 이용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헤어조크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은 합리적인 회의론으로 인간의 한계를 계몽적인 방법으로 드러낸다 - 시네 21 감독사전


너무 노골적인 풍자라 역겹다는 평도 들었던 영화

꼭 보실 분들은 링크타고 오세요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2 Comments
1 초코파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BR>연달아 두 편이나...! 후덜덜.....
S macine  
  나도 후달린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