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지인이 파주 화석정 인근에 있는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해서 집들이를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흔해서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개망초를 집안에 놓았는데 깨끗한 모습에 놀랐습니다. 아름답더군요.
그동안 개망초를 홀대했는데 미안하네요.
그리고 동네 구경하던 중에 접시꽃이 눈에 보여서 찍었습니다.
집 바로 옆에 화석정이 있어서 임진강을 바라보았습니다만 보안상 임진강의 모습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화석정의 유래는 율곡 이이의 5대조인 강평공 이명신(康平公 李明晨)이 세종 25년(1443년)에 정자를 세우고 1478년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중수하였다.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명명하였다.
율곡 선생은 평소 정자에 제자들과 함께 기둥과 서까래 등에 들기름을 반질반질하게 먹여 두었다고 하는데, 훗날 임진왜란(선조 25년, 1592년)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당시(4월 29일 밤) 억수같은 폭포속에서 강을 건널 때 이항복이 화석정에 불을 질러 무사히 배가 강을 건넜다고 전한다. 율곡선생은 국사의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여생을 이 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면서 시와 학문을 논하였다고 한다.
선조의 의주파천에는 재밌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백성들이 대문 널판지로 다리를 지어 임금이 임진강을 건널 수 있게 하였다해서 그 동네 이름이 널문리였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중 널문리에서 휴전회담(북중미)을 시작하게 되었고 북측의 중국참석자를 위해 널문리를 한자어로 변자했는데 그것이 판문점이 되었다고 하네요...
아직까지는 판문점이란 지명의 유래에 대한 보편적 설이 되었습니다만 조선시대 문헌에 이미 판문이라는 한자지명이 발견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화석정 이야기를 들으니 선조가 화석정 앞을 건넜는지 판문점에서 임진강을 건넌 것인지... 아니면 화석정 앞이 옛날의 판문리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잡생각을 해봤습니다.
추카추카 13 Lucky Point!
실제로는 기우뚱하지는 안겠죠..
사진을 찍을 때 대충 찍어서 그런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