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 더 그레이..

드라마 이야기

기생수 더 그레이..

22 Rabun 8 210 1

원작의 아성에 범접하려면 10년은 이르다. (일본식 표현) 연출이나 스케일, 백번 양보해서 메시지까지는 좋았지만 원작 기준 작품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감정선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설정 자체가 주인공과 기생 생물간의 유기적인 티키타카가 일어나기 힘드니까. 결과적으로 극이 마무리될 때까지 둘 사이의 유대감 및 라포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막바지에 기생수가 '너의 뇌를 빼앗지 않아서 다행이야'라는 원작 대사를 치다니 이건 좀 무리수 아닌가?

그래도 그간 블럭버스터를 연달아 배출해낸 연상호 사단의 노하우와 발전된 기술력 덕에 액션이나 CG는 준수했다. 작품이 스타트를 끊자마자 기생수가 목표물을 찾아가는 모습을 3인칭에서 1인칭으로 전환하며 연출한 씬은 CG와 실사 합성, 카메라 워크의 유려한 콜라보를 보여줬고 드론을 활용해 패닝과 틸팅을 만화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롱테이크샷들은 만화, 애니, 영화를 다 섭렵한 내 입장에서도 신선하고 임팩트 있는 아웃풋을 선사했다. 항간에는 CG티가 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건 만화 원작의 한계이니 정상참작이 가능하고 일본의 영화판마저 그런 실정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앞서 언급한 3인칭→1인칭 씬은 티가 많이 나긴 했다ㅋㅋ)

하지만 연출만 가지고는 커버가 안되는 게 있었으니... 바로 액션의 설득력. 원작에 안나오는 날개의 등장까지는 오케이. 그리고 그 폐해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건 엑설런트. 근데 그게 다네... 6편이라는 회차의 압박 때문인지 작품에서 그려내는 기생수의 특징은 너무 한정적이고 파편적이다. 물론 1편에서 놈들의 생리(生理)에 대해 주입식으로 설명해 주기는 하지만 그건 뭐 '디워'의 오프닝 수준으로 일방향적이고 그 세세하고 복잡미묘한 매커니즘을 작품에 담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아무래도 앞서 언급한 주인공과 기생 생물간 상호작용의 결여가 이해도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친 모양. 이런 와중에 막판에 치트키 쓴 미니 기생수 하나가 안면몰수하고 활개를 치고 다니니... 원작을 본 입장에선 말이 안돼서 어이가 없고 안본 입장에선 정보의 결여로 인해 의아한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

다음은 연기. 이 부분은 나 역시 대중과 상당 부분 뜻을 같이 한다. 우선 당연히 이정현을 언급해야 하는데 첫 브리핑 시퀀스가 좀 오버스럽고 오글거린다...는 당연한 얘기고 개인적으로 제일 아쉬운 건 그 연기가 작품색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배틀로얄'이나 '간츠', '신이 말하는대로'같은 일본 만화들을 보면 모순의 미학, 의외성을 위해 작품 분위기와 대비되는 아기자기하고 깜찍발랄한, 속된 말로 모에모에한 등장씬을 연출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그런 언벨런스함과 불협화음을 통해 작품의 충격성이나 비극성이 배가될 때 얘기고 이 드라마는 그런 류의 기만적 연출을 잘 소화하지 못했다.

바로 이미 잔인하고 참혹한 장면들이 즐비해 작품의 분위기가 숙연, 암울의 끝을 달리는 와중에 뜬금 이정현의 대책없이 발랄한 연기가 개그처럼 치고 들어오기 때문. 물론 해당 회(回) 막바지엔 연기의 달인 이정현답게 돌연 감정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지만 아무래도... 돌이키기엔 다소 늦은 감이 있지 않았나 싶다. 차라리 중반부 즈음에 환기 차원에서 그런 느낌으로 갔다면 거부감이 덜했을텐데 아쉽다. 원작에서도 익살과 해학을 머금은 기생수 대책위원회 파트는 중후반부에 등장하니 말이다.

그 외엔 뭐... 주인공 전소니를 제외하면 다들 책잡힐 게 없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구교환의 누나 역할인 윤현길의 핏기없고 서늘한 호연은 씬스틸러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 전소니의 경우도 액팅보다는 대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 따지면 다른 배우들도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다소 아쉬운 성과를 맺은 듯. 아무튼 대배우들 사이에서 고생 많았다. 첫술에 배부르랴ㅋㅋ

정리하자면 시각효과는 양호하지만 스토리는 핀트를 잘못 잡았고, 연기는 전반적으로 훌륭하지만 듬성듬성 구멍이 있다... 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시작하자마자 원작의 중후반부로 건너뛰고, 이후엔 오리지날 스토리로만 이어가다가 마무리는 원작스럽게 간다? 이것부터가 호수(好手)는 아니었던 것 같다. 원작 팬들과 뉴커머들을 동시에 사로잡으려면 선택과 집중에 더 공을 들였어야 했다고 본다. 아예 오리지날 스토리가 주가 되고 팬서비스는 양념처럼 감초 역할만 하던가, 아니면 원작에 대한 오마주와 트리뷰트로 점철해놓고 회심의 반전이나 마지막 한방을 통해 의외성을 노리던가. 결국 '기생수 더 그레이'의 패착은 회차의 압박으로 인한 설명의 누락도 있지만 시청자로 하여금 감정적 동화는 못시키면서 감동은 챙기려고 한, 이도저도 아닌 스탠스에 있는 게 아닌가 한다.

★★★★★★★◐☆☆+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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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21 zzang76  
저도 그냥 재밌게 봤는데.... 일본은 손가락으로 편하게 연기했을텐데... 전소니배우는 머리를 돌려가며 연기한게 좀 불편해보이더라구요 ㅎㅎㅎ
22 Rabun  
그러게요. 노동량은 엄청나면서 그만한 아웃풋은 내지 못하다니 안타깝네요ㅋㅋ;;
17 oO지온Oo  
계속 말해왔지만, 드라마 편수 자체가 너무 적었어요. ㅡㅡ;;;;;;;;;;;;;;
편수의 부족으로 인한 파생 에러들은 언급하기조차 귀찮을 정도고
이정현의 연기를 저만 갑툭튀 느낌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평점은 알맞게 준 듯 하고..
한국 드라마 기생수 - 더 그레이를 치켜올리기 위해서 일본 극장판 기생수를 깎아내릴 필요가 있었나 싶은 느낌의 리뷰 영상들이 보기 싫었네요.
일본 극장판 기생수는 나름 퀄리티도 괜찮았고.. 영화 메시지 자체도 원작의 메시지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서 재밌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기생수 - 더 그레이 또한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고..
일본 극장판 기생수 또한 마찬가지로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인 것인데..
두 작품에서 고어 표현 등은 너무나 확연하게 차이가 났었다는 사실이 아쉽네요.
22 Rabun  
한국 기생수를 띄워주기 위해 일본 거를 까다니... 조회수빨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군요. 제가 이래서 굳이 리뷰를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원작을 너무 사랑하는 입장에서 타인의 감정적인 평에 설득되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죠.
일단 편수가 너무 적었고, 이정현의 연기가 너무 불편했고, 그리고 제일 아쉬웠던건 액션, 액션이라도 좀더 잔혹하게 그려줬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운거 투성이네요
22 Rabun  
잔혹함은 애니에서 너무 너프먹어서 걍 괜찮은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편수 부족으로 인한 설정 구멍과 이정현의 만화틱한 연기는 어떻게 커버쳐줄 수가 없네요..
시즌 2도 뚝딱 만들어 내겠네요
22 Rabun  
마무리를 그렇게 했는데 시즌2가 안나오면 안되죠ㅋㅋㅋ